정명훈, 아시아 음악인들 맏형노릇 10년째

31일 오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정명훈씨의 지휘봉 아래 모여앉은 90여 명의 국내외 유명 연주자들은 서로 국적은 달랐지만 두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아시아 명 연주자들이라는 점, 그리고 시카고 심포니·뉴욕 필하모닉·피츠버그 심포니·도쿄 필하모닉·서울시향 등 세계 37개 교향악단에서 활약하고 있는 음악인들이라는 점이었다.

이 아시아의 음악 엘리트들은 1997년 정명훈씨의 제안으로 처음 뭉쳤다. 이름하여 ‘아시아 필하모닉’. 음악 감독을 맡은 정씨가 이끄는 가운데 ‘아시아인의 공감대’를 끈으로 삼아 10년간 서로 음악적으로 소통하고 격려하며 독특한 화음을 빚어왔다. 이들이 특별한 인연을 맺은 지 10년을 맞아 3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4일 예술의전당에서 연주회를 갖는다. 이번 기념 연주회의 주요 레퍼토리는 10년 전 창단 연주회 때 연주했던 ‘브람스 교향곡 1번’이다.

오랜만에 모인 아시아 연주자들은, 가족 같은 이 악단과의 즐거운 인연들을 이야기했다. 현재 독일 자르브뤼켄 방송 교향악단의 수석을 맡고 있는 호른 연주자 한 샤오밍(중국)은 “저와 정명훈 선생님의 인연은 20년이나 된다”며 미소 지었다.

“제가 1986년쯤 오케스트라 연주자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이 악단의 상임 지휘자가 정 선생님이었어요. 그런데 오늘까지 20년, 선생님은 언제나 한결 같은 모습이에요. 지휘하고, 악보를 끼고 다니고, 시간 나면 항상 피아노 연습하고….”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에서 32년째 활동 중인 한국인 김금모씨는 지난해 ‘아시안 필’ 연주회를 위해 모였다가 일본인 음악 친구를 사귀었다. 그는 도쿄 필의 제2바이올린 연주자 유코 야마누치와 같은 악보를 보면서 호흡을 맞추다가 “언젠가 한국어를 공부해서 당신에게 편지를 보내겠다”는 약속을 들었다. 그 약속대로 일본 친구는 최근 “김금모 선생님, 항상 건강 조심하세요”라는 내용의 한국어 편지를 보내왔고, 김씨는 지금도 가방 속에 이 편지를 간직하고 다닌다. 시카고 심포니 악장인 로버트 첸(대만)은 “미국·유럽 악단에 흩어져 있던 아시아 음악인들이 다시 아시아로 돌아와 활동한다는 건 분명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아시아 필하모닉은 여름마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형식으로 활동해 왔으며, 2000년 이후 재정난으로 잠정 중단을 맞았다가 인천시의 후원으로 지난해부터 활동을 재개했다. 2010년쯤엔 상설 오케스트라 전환을 추진 중이다.

지휘자 정명훈씨는 “세계에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오케스트라는 너무나 많지만, 뜻있는 오케스트라는 상대적으로 적다. 우리는 공통 언어인 음악을 통해 아시아 음악인들끼리 서로 이해하자는 뜻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