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소극장들, 길을 건너다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명륜동2가의 골목길에 자리한 ‘환희 소극장’. 조그만 건물 지하에서 6명의 남·여 배우들이 무대와 객석에 오순도순 둘러앉아 대사 연습을 하고 있었다. 검정색으로 칠해진 나무객석, 무대, 아담한 카페, 관객 대기장소 등으로 소극장의 구색을 갖추었다. 연출가 박연숙씨는 “지난 6월 대학로에서 이곳으로 이사온 이후 단원들이 함께 페인트도 칠하고 나무도 다듬어 직접 공연장을 만들었다”며 “대학로와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면서도 대관료 부담은 절반 이하로 줄어 작품에 몰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옆 건물 ‘춤살판 소극장’에서도 국악 반주에 맞춰 한국무용 연습이 한창이었다. 지난달 문을 연 이곳은 국악과 한국 무용 등 전통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혜화로터리를 경계로 ‘젊음의 거리’ 대학로와 구분됐던 명륜동과 혜화동에 최근 소극장과 공연장이 속속 들어서면서 ‘문화의 거리’로 탈바꿈하고 있다. 현재 공사중인 공연장 2곳이 완공되면 공연시설이 10여개로 늘어나게 된다.

원래 이 동네는 대학로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연문화와는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대학로 공연장의 비싼 대관료 부담을 견디지 못한 극단들이 하나 둘씩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30여년 전 일찌감치 이곳에 자리를 잡은 극단 연우무대가 맏형 노릇을 하고 있다.

작년 6월 대학로를 떠나 혜화동 우암길 인근에 둥지를 튼 ‘게릴라 극장’에는 대학로 시절 못지 않게 관객들이 몰리고 있다. 주택가 골목 한쪽에 검정색으로 꾸민 세련된 극장 외관이 눈길을 끈다. 극장 입구에는 야외 카페처럼 테이블을 내놓아 동네 사람들도 쉴 수 있도록 배려했다. 김태수 극장장은 “주민들로부터 우리 극장이 생긴 후 땅값이 뛰었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며 “머지않아 이 지역이 대학로 못지 않은 공연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게릴라 극장과 우암길을 경계로 마주하고 있는 ‘오아시스 세탁소 극장’은 재작년 생겼다. 저렴한 가격에 수준높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주가를 올리고 있다. 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극단 ‘모시는 사람들’은 혜화동 동사무소옆 유흥주점을 개조해 소극장 ‘모심’으로 만드는 공사도 하고 있다. 오아시스 세탁소 극장 뒤편 골목에도 새로운 소극장이 들어설 건물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이 동네가 ‘제2의 대학로 소극장가’가 되면서 인근의 박물관 등 문화시설에도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환희 소극장과 춤살판 소극장 맞은 편에 있는 짚풀생활사박물관은 지난달 한옥 짚풀공예 체험관을 새로 개관했다. 작년 10월 국내에선 처음으로 생긴 혜화동 한옥 동사무소도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짚으로 뱀을 만들어 걸어두면 재물이 들어온다는 민속을 재현하는 짚뱀 만들기를 비롯해 짚으로 여치집 만들기 등 각종 체험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을 비롯해 방학을 맞은 학생들도 몰리고 있다.

인병선 박물관장은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이 박물관에 들르기도 하고, 박물관을 찾은 부모와 자녀들이 공연을 보러 가기도 한다”며 “조용하기만 했던 명륜동·혜화동 골목에 요즘 문화의 활기가 넘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