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는 골목길, 화가는 주민들이죠”

싱그러운 꽃, 푸른 하늘, 시원한 바다… 답답한 벽으로 둘러싸인 구불구불한 골목길 사이로 층층이 쌓아올린 계단들은 멋진 캔버스가 됐다.

서울의 대표적인 고지대 주택가 중 하나인 서대문구 북아현3동이 요즘 멋진 ‘거리 미술관’으로 변신하고 있다. 9일 지하철 2호선 아현역에서 추계예술대 쪽으로 올라가다 만나는 금화산 아래의 가파른 북아현동 골목길. 1-1755번지 앞 계단에는 노랑·분홍·흰색의 꽃들이 어우러진 꽃밭이 그려졌고, 1-52번지 주변 계단은 푸른 하늘 사이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흰구름들이 펼쳐졌다.

빨간 벽돌 담벼락에 둘러싸인 1-1378번지는 멋진 해양 수족관이 됐다. 파란 바닷물이 넘실대는 44개의 계단에서는 나비고기와 흰동가리들이 헤엄치고 있고, 보글보글 공기방울도 솟아올랐다.

계단을 오르던 주민 김춘자(49)씨는 “삭막한 느낌의 동네였는데, 계단 그림 덕에 요즘은 분위기가 산뜻해졌고 걷는 것도 힘이 덜 든다”고 말했다.

계단벽화의 탄생은 ‘드라마틱’했다. 지난 6월에 KBS에서 단막극 촬영을 위해 계단에 꽃그림을 그려놓은 것에 착안해 주민들이 직접 ‘화가’로 나선 것. 홍익대 미대에 재학중인 동네 대학생들이 밑그림을 그렸고, 자원한 ‘아마추어’ 주민들은 색을 입혔다. 물감이 비에 씻겨나가는 것을 막아줄 외장재도 주민들이 일일이 칠했다. 페인트와 붓 등의 제작비는 주민자치센터 수강료 수입으로 충당했다. 작업에 참여한 양세준(24)씨는 “멋지게 가꿔진 동네 풍경에 다들 뿌듯 해하고 있고, 다들 다음 작품에 들어가야 한다고 아우성들”이라고 말했다.

북아현3동은 올해 말까지 계단 7곳에 그림을 더 그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