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을 지식으로 여기는 한 ‘사기극’ 계속될 것”

―김옥랑씨 허위 학력 파문을 보는 느낌이 예사롭지 않겠다.

“그는 ‘딜레탕트(예술이나 학문을 취미 삼아 하는 사람)’였다. 똑똑하다는 연극인들은 거의 다 동숭아트센터의 후원을 받았다. 김씨는 늘 대화를 원했으나, 우리는 현장 체질이라 말하는 걸 싫어했다. 김씨와의 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정도(正道)를 걷지 않아 저렇게 됐다.”

―정도를 걷지 않았다니?

“부산 자갈치시장의 큰 중매인이었던 아버지 말씀이 있다. ‘자기 능력의 70~80%만 보상받고 살면 된다’는 것이다. 장사꾼의 철학이다. 세상으로부터 120~130%씩 받으려 하니 불안해지고 죄를 저지르는 거다.”

―학벌을 포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당신은 ‘방송대 학력’을 공개하고 다닌다.

“70년대 말 내가 다닐 땐 방송대가 2년제였다. 초등학교 교사가 꿈이었을 때라 방송대 초등교육과를 나왔다. 난 학사가 아니다. 연극 동네에서는 아무 문제 없었지만, 부산일보 기자부터 대학 교수까지 취직을 하려 할 땐 늘 ‘가방끈 투쟁’을 벌여야 했다.”

―90년대 말 서울예대에서, 2000년대엔 성균관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건 학벌보다 능력이나 현장 경험을 인정받았기 때문 아닌가?

“대학에서 가르쳤다고는 하지만 대우를 제대로 못 받았다. 그들은 꼭 ‘교수’라는 말 앞뒤로 이상한 수식어를 갖다 붙였다.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에는 2001년 학과 창설할 때 ‘전임강사 대우’로 들어가 2004년 ‘초빙 조교수’로 끝났다. 초빙교수는 보수도 형편없고 학사 관리에서 제외된다. 연구비도 실습비도 안 나오기 때문에 제대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어렵다. 나는 ‘대우’ ‘초빙’ 같은 꼬리표를 끝내 뗄 수가 없었다. 화가 났다. (대학에도 법률적 제도적 고민은 있었겠지만) 그들은 능력 대신 서류로서의 학벌을 선택한 것이다.”

―당대 최고 연출가로 꼽히는 사람이 연극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도 석·박사 학위가 필요한가?

“서류가 거추장스러울 만큼 유명해진 뒤에도 교수 임용 심사 땐 ‘무(無)학벌’이라는 이유로 업적을 증빙하는 자료를 ‘박스떼기’로 제출해야 했다. 그래도 정식 교수가 못 됐다. 고졸 학력이었던 연출가 박근형은 마흔 살 넘어 대진대학에 들어가 졸업장 따고 서울예대 교수가 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은 교수 요원으로 쓰려고 했는지 나와 함께 일하는 김광보(40대 연출가)를 자기네한테 달라고 했다. 그래서 ‘그 사람은 고졸이다’고 했더니 그 후 아무 말 안 했다.”

―당신도 지금 동국대 전임 부교수 임용 과정에 있는데 결과가 나왔나?

“올해 5월쯤 ‘전임 부교수’를 제의받았다. ‘신정아 사건’이 터진 뒤인 7월 말에 총장 인터뷰까지 했는데 분위기 좋았다. ‘신정아 사건’이나 학벌 얘기는 안 나왔다. 8월 말에 이사회가 열린다는데 김옥랑 사건이 터져 어떻게 결판날지 모르겠다. 동국대는 우리 연극사에서 보수정통의 맥을 잇는 학교다. 그래서 지원했다. 이번 일이 실력이냐 학벌이냐를 결정짓는 바로미터가 될 것 같다.”

―이번 ‘가짜 학력’ 파문을 어떻게 해석하나?

“언제부턴가 대학들이 앞다퉈 야간대학원을 만들어 비즈니스를 하기 시작했다. 쉽게 학위를 따다 보니 이런 사건이 터진 것이다. 대학이 세속화되니 덩달아 세속화되는 예술가들이 나오는 거다. 현장 예술가들은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대학에 적(籍)을 두지 않으면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학벌이 없으면 교수가 안 되니까 (학력 위조) 유혹에 넘어가는 거다.”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이번 사건은 한국의 지식사회가 무너졌다는 증거다. 거대담론의 상실과 인문주의의 위기가 이어진 결과다. 지식인과 전문가는 구별돼야 한다. 지식인이라면 자기 말에 책임을 진다. 단국대가 김옥랑씨를 교수로 뽑은 것도 김씨의 지식 때문이 아니라 돈이나 배경 때문이라고 본다. 대학과 지식인은 본래의 엄격성을 되찾아야 하고, 예술가들은 학벌이 아닌 능력으로 교수가 될 수 있어야 한다. 학벌을 지식으로 여기는 한 학벌 사기극은 또 등장할 것이다.”

 

이윤택은 

시인이자 극작가, 연극 연출가이자 영화감독으로 다채로운 활동을 펼치고 있다. 고향 부산에서 경남고를 졸업하고 1972년 서울연극학교(드라마센터)에 들어갔지만 한 학기 만에 중퇴한 뒤 부산에서 배우로 활동했다. 부산우체국, 한국전력에서 일하며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했다. 1978년 황동규 시인이 심사한 제1회 방통문학상에 시가 당선됐고, 그 당선작 ‘도깨비불’로 현대시학에서 등단했다.

1986년 연희단거리패를 만들어 부산 가마골소극장에서 활동하다 1989년 동숭아트센터에 초청된 ‘시민 K’ 공연이 호평 받으며 서울로 진출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오구’, 유인촌이 주연한 ‘문제적 인간 연산’, 손숙 주연의 ‘어머니’가 대표작. 90년대 전반까지는 지식인을 조롱하는 연극을 하다 90년대 후반부터는 대중극으로 나갔다. 지난해엔 ‘화성에서 꿈꾸다’로 한국뮤지컬대상 연출상을 받았다.

스스로 “정치적으로는 무정부주의자”라고 말한다. ‘노사모’가 만들어질 때 영화감독 이창동씨가 “문화인으로서 세상 바꿔보자”고 제안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경남고 시절 문재인(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씨와 한 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