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박수근 위작사건 검찰수사 ‘갈수록 미궁…’

2005년 국내 미술계에 사상 최대의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이중섭·박수근 위작(僞作)사건에 대해 위작이 제조·유통된 경로가 밝혀지지 않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해 2005년 10월 중간수사결과 발표 이후 2년 가까이 수사를 계속해 온 검찰은 “제조·유통 경위에 대해서는 그동안 수사에 착수하지 못했다”고 13일 밝혔다. 하지만 이 작품 진위감정을 맡았던 최명윤 명지대 교수는 “위작들이 제조·유통된 과정에서 미술계 고위 인사가 연루되는 등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이 발견됐다”며 검찰과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 미술계는 이 사건의 수사 전개 과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사건이 미궁에 빠질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이 사건은 2005년 3~4월, 이중섭과 박수근의 작품 2700여 점이 위작논란에 휩싸이며 시작됐다. 이 작품 중에는 서울옥션에서 이중섭의 차남 이태성씨의 위탁으로 판매된 이중섭의 그림 ‘물고기와 아이’도 포함돼 있고, 대부분은 한국고서연구회 김용수 명예회장이 소장한 작품들이다. 당시 한국미술품감정협회 관계자들이 이 작품들에 대해 위작 의혹을 제기하자, 이씨와 김 명예회장은 감정협회 관계자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검찰은 이들이 소장한 작품 2700여점 중 표본 추출한 58점을 외부 기관 3곳에 의뢰해 감정했다. 그 결과 “문제가 된 작품들이 위작으로 의심된다”며 감정협회 관계자들에 대해 ‘혐의 없음’ 결정을 내렸다. 또 “이 위작들을 누가 그렸는지, 어떻게 유족에게 전해졌는지에 대해 밝혀내겠다”고 했다.

현재 이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 변찬우 부장검사는 13일 “작품을 소장하고 있던 이태성씨가 일본에서 들어오지 않고, (한국에 있는 소장자인) 김용수씨도 협조하지 않아 제작·유통 경위에 대해서는 수사에 착수하지 못했다”며 “일단 2005년 표본 감정을 했던 58점 외에 나머지를 포함한 2700여 점 모두에 대해 진위감정 조사가 대체로 마무리됐다. 제조·유통 경위 수사는 감정이 완전히 끝난 뒤에 다시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우리가 작품 진위 여부를 의뢰한 전문기관은 가짜라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우리로서는 분명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고, 제조·유통 경위가 밝혀지기 전에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검찰의 의뢰로 작품 감정을 책임졌던 최명윤 명지대 교수는 “2700여 점 외에도 가짜 작품이 최소한 수십점 이상 더 나왔다”고 폭로했다.

과거에도 미술 작품 위작 사건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위조범과 유통경위를 밝혀내지 못한 채 미궁에 빠지곤 했다. 미술계는 이 때문에 위작 사건이 끊이지 않는 것이라며 이번에는 반드시 제조·유통 경위를 밝혀내 근본적 문제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2005년 당시 검찰의 의뢰로 안목감정을 했던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위작은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진짜로 둔갑해 유통됐다는 게 더 중요한 사안이다. 위작을 소유했던 사람이 분명히 있는데 검찰이 지난 2년 동안 제조범과 유통경위를 전혀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사건이 이대로 유야무야 되면 이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