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그 남자 그 여자 지금은 어느 우산 아래서…

이 영화를 단지 ‘한채영의 베드신’ ‘아찔한 크로스 섹스’라는 키워드로 이해한다면 당신은 극장을 빠져 나와 ‘이게 뭐야’라며 툴툴댈지도 모른다. 한채영의 그림 같은 몸은 저속하고 솔직한 클로즈업이 아니라, 분위기에 묻어가게 아련하게 표현돼 있고, ‘스와핑’을 떠올리게 하는 부부의 선택은 갑작스러운 충동이 가져온 한때의 불장난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 보인다.

15일 개봉한 영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18세)는 가볍지 않은 소재를 절대 무겁지 않게 건드린 감각이 돋보이는 드라마다. 한시라도 떨어지면 안될 것 같은 유나(엄정화)와 민재(박용우) 커플과 사랑이라곤 도대체 찾아볼 수 없는 무미건조한 영준(이동건)과 소여(한채영) 커플의 엇갈린 만남과 사랑은, ‘극적’이라는 단어로 피해가기엔 어디선가 있을 법한 이야기 구조다. 적어도 가요 ‘잘못된 만남’을 울면서 불러봤거나, 드라마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을 가슴 치면서 봤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저건 내 얘기야’라며 외칠지도 모른다. 서류를 읽으며 혼자 밥을 먹는 영준과 남편에게 속 얘기 한번 제대로 못 해보고 ‘정숙’을 강요받았던 소여의 마음속에도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는 데에 인간적 동정까지 느낀다.

하지만 영화가 지극히 현실적으로 보인다는 건, 지극히 평범하다는 단점의 표현이기도 하다.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소녀 가장이나 마찬가지로 팍팍한 삶을 사는 유나에게 끌리는 재벌 2세 영준이나, 남편과 정반대로 자상하고 유머 넘치는 민재에게 푹 빠진 소여나 드라마 속 구태의연한 인물들의 전형성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냐’는 질문을 대차게 던지고 있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사랑이면 다 돼’라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는 오히려 파격성을 감소시킨다. 주인공 중 하나가 병에 걸리거나 죽는다는 파국으로 결말을 설정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 다만 재벌(영준)에 패션 컨설턴트(유나), 조명 디자이너(소여) 등 주인공 직업의 화려함 덕에 보이는 감각적인 장면과 영화 ‘화양연화’를 보는 듯한 유려한 색감 등으로 시각적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