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 포만감

〈제9보〉(127~140)=“죽을 때까지 강해지겠다.” 2006년 후지쓰배 결승전 때 박정상의 부채에 새겨져 있던 글귀다. 큰 판을 앞두고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본인이 직접 써넣은 것이었다. 어려운 장면 때마다 그는 부채를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효과는 만점. 박정상은 그 바둑을 승리해 첫 세계 제패, 병역 특례 혜택, 九단 승단 등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 자기 최면술이야말로 승부사들에겐 최고의 재산이자 테크닉이다.

127은 정수. ‘가’의 약점을 놔둔 채 ‘나’로 절단하면 참고 1도 백 2 다음 A와 B를 맞봐 긁어 부스럼이 된다. 131까지 이런 정도. 132 때 133을 소홀히 하면 참고 2도 6까지 선수로 당하고, 훗날 백 C까지 남는다. 대마 잡히는 것보다 더 못 견딜 수모다.

중간 점검을 해 보자. 백이 우변을 크게 챙기고 상변 흑진도 파괴하는 동안 흑의 소득은 좌중앙서 백돌 몇 점 잡은 것뿐이다. 136으로 넘음을 방지해선 백의 필승지세. 하지만 한 판 바둑을 이기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포만감에 젖은 백은 무심결에 140으로 막았고, 여기서부터 반상은 다시 출렁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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