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에서 울려퍼진 가야금

도시는 음악을 기억한다. 뉴욕 런던 파리 홍콩 베이징 도쿄…. 지구촌의 대도시는 ‘침향무’를 기억하고 있다. 이 곡은 작곡가 황병기 자신의 연주를 통해서, 많은 가야금 연주자를 통해서 세계 대도시의 주요 공연장에서 여러 차례 연주됐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모스크바. 수교가 된 지 10년이 지났어도 아직 한국의 전통 음악은 이 도시에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다.

지난 23일 모스크바 인터내셔날 퍼포밍 아트센저에서 열린 ‘한·러 교류축제’ 개막 공연의 첫 곡이 바로 ‘침향무’였다. 황병기 명인과 국립국악관현악단 가야금연주단원이 함께 연주한 이 곡은 러시아 사람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아름다운 통로와도 같았다.

이어서 북한 작곡가 최성환의 ‘아리랑 환상곡’을 지휘한 김홍재는 일본에 거주하는 ‘코리안’이다. 그가 대한민국의 젊은이들과 함께 ‘아리랑 환상곡’의 연주를 끝냈을 때 객석의 박수는 무척 뜨거웠다. 마치 러시아 민요 ‘카츄샤’ 연주가 끝났을 때 러시아 청중들이 보내는 박수 같았다.

이번 공연에는 국악의 ‘빅3’가 모두 참여했다. 황병기, 안숙선, 장사익이 주인공이었다. 어떤 이는 장사익이 국악인인가 의문을 던지지만, 어떤 노래일지라도 투박한 듯 시원한 통성으로 부르는 장사익이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노래를 부르는 소리꾼이다. 안숙선이 심청이 물에 빠지는 대목인 ‘범피중류’를 부를 때, 그 안타깝고 급박한 상황은 한국어를 모르는 러시아인들에게도 아름다움으로 전달되는 듯했다. 장사익이 투박함과 소박함으로 한국을 알렸다면, 안숙선은 정조(情操)와 격조(格調)로 판소리를 불렀다.

그동안 한국 전통음악의 해외 공연은 무수했다. 그럼에도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조화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모스크바에도 가야금이 입성했다. 이제 그들도 ‘침향무’에 감동하기 시작했다. 한국인이 차이코프스키라는 작곡가를 알고, 연말에 ‘호두까기인형’을 보는 것처럼 언젠가 러시아의 많은 사람들도 황병기를 알게 되고 국악 관현악을 듣는 것이 일상적인 문화가 될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