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샀다 오후에 팔고… 예술을 주식하듯

지난 7월 K옥션에서는 원로화가 김종학의 4호 크기 그림 ‘꽃’이 1450만원에 낙찰됐다. 불과 6개월 전인 올해 1월 서울의 한 화랑에서 500만원에 판매된 작품이다.

서울 한 화랑은 최근 초보 컬렉터라며 찾아온 한 50대 남자에게 요즘 인기 있는 작가 P씨의 작품을 900만원에 팔았다. 한 달도 안돼 이 작품은 인사동의 다른 화랑에 1800만원 가격표를 달고 걸렸다. 이 화랑의 대표 A씨는 “요즘은 이렇게 투기를 목적으로 그림을 샀다 팔았다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이런 투기꾼들에게 팔지 않으려고 주의 하는데, 이를 가려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미술시장이 급격히 달아오르자 미술시장에도 ‘단타족(단기간 수익을 노리고 주식 매매를 반복하는 투자자)’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서울옥션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근현대 서양화 작가 30명의 가격지수는 2001년을 100으로 놓았을 때 2007년 상반기에 227로 두 배가 넘게 올랐다. 실제 인사동에서 거래되는 가격이 3~5배 오른 작가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블루칩 작가들의 경우 전속화랑에서 전시를 할 때 처음 판매되는 가격인 ‘전시가격’에 살 수 있는 작품의 수는 한정돼 있다. 따라서 이런 전속화랑과 인맥이 있는 사람들이 전시가격에 작품을 산 뒤 곧바로 다른 소형 화랑이나 개인에게 프리미엄을 얹어 팔아 차익을 챙기는 것이다.

또 다른 화랑 대표는 “그림 값을 치를 때 ‘인사동 수표(시중 은행의 인사동 지점에서 발행된 수표)’를 내미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인사동의 소형 화랑에서 고용한 나까마(미술품 중개상인을 일컫는 일본식 속어)들이다”며 “미술평론가들 중에도 화랑과의 인맥을 이용해 전시가격에 작품을 산 뒤 곧바로 프리미엄을 얹어 다른 곳에 파는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미술계에서는 이렇게 투기를 목적으로 작품을 사고 파는 단타족의 기승을 우려하고 있지만, 이를 막을 법적 대책은 없는 현실이다. 김순응 K옥션 사장은 “인기 있는 블루칩 작가들의 경우 몇 배를 주고라도 일단 사두면 곧 값이 더 오른다는 심리가 있어서 이런 현상이 생겼다. 이는 주식시장이 호황일 때 상한가에라도 사려는 심리와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행위를 비난하거나 막을 방법은 없다”고 덧붙였다.

제도적 법적 장치는 없다. 그래서 대형 화랑이 직접 나서고 있다. 인기작가들의 1차 판매권을 갖고 구매자들에 대한 관리를 하는 것이다. 가나아트 갤러리 이옥경 대표는 “작품이 투기꾼들 사이에서 단기간에 왔다 갔다 하면 작가의 평판에 해가 되기 때문에 요즘은 그림을 팔 때 2~3년 이내에는 팔지 않는 조건을 걸고, 사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하나하나 체크한다”고 말했다. 서진수 미술시장연구소장(강남대 경제통상학부 교수)은 “다른 시장과 비교해보면 미술시장은 지난 10년간 불황이었다가 지금 간신히 살아나는 단계에 불과하다. 부정적인 면을 확대해서 볼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경매에서 한두 번 고가에 낙찰된 작가의 가격이 곧바로 시장가격이 되어 버리는 등 심하게 왜곡된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 걱정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