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의 거장’ 피아졸라, 뜨거운 거리의 음악을 서늘한 무대로…

1939년 명(名)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슈타인(1887~1982)이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한 아파트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초인종 소리가 들렸고, 루빈슈타인은 스파게티를 먹느라 토마토 케첩이 덕지덕지 묻은 냅킨을 그대로 두르고서 문을 열었습니다.

18세 소년이 “당신을 위해 쓴 피아노 협주곡의 악보를 받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악보를 훑어보던 루빈슈타인은 소년에게 “협주곡에 피아노 대목은 있는데 오케스트라용 악보는 어디 있니?”라고 묻습니다.

소년은 협주곡에 피아노 말고도 오케스트라 연주가 따로 필요한지 몰랐나 봅니다. 루빈슈타인은 “오케스트라가 없다면 소나타나 모음곡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조언하고 “음악을 진지하게 공부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소년이 고개를 끄덕이자 주변에 전화를 걸어 작곡 선생님을 소개해줍니다.

비록 협주곡과 소나타의 차이는 몰랐지만, 공연에서 느꼈던 감동을 그대로 음악으로 담아내고 피아니스트를 찾아왔던 소년. 바로 ‘20세기 탱고의 거장’ 아스토르 피아졸라(Piazzolla·1921~1992)입니다.

탱고는 항구와 밤, 범죄와 카바레와 어울리는 ‘거리의 음악’이었습니다. 피아졸라는 탱고의 출생지를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창가”라고 부릅니다. 낮에는 클래식 작곡을 공부하고, 밤에는 반도네온으로 카바레에서 탱고를 연주하던 피아졸라는 자신을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 비유합니다.

1954년 그는 자신이 작곡한 클래식 작품을 싸들고, 다니엘 바렌보임과 애런 코플란드의 스승으로도 유명한 여성 작곡가이자 교육자인 나디아 불랑제를 찾아갑니다. 불랑제는 그의 클래식 곡을 듣더니 “작곡은 잘했다만, 거기엔 너 자신이 없다”고 말합니다. 반면 그의 탱고 음악을 들은 뒤 피아졸라의 손을 잡고 “이것이야말로 피아졸라야. 절대 그만 두지 말게”라고 조언합니다.

뜨거운 거리의 음악인 탱고를 서늘한 콘서트 무대로 옮겨온 것이야말로 피아졸라의 가장 큰 공적 가운데 하나입니다. 1955년 자신의 8중주단을 결성하면서 “청중에게 들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댄스홀에서는 연주하지 않는다”, “탱고의 음악적 자원을 활용하기 위해 노래로 된 작품은 연주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내걸었습니다.

당대에는 ‘아방가르드 탱고’ ‘탱고 혁명’으로 불리며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지금도 기돈 크레머(바이올린)와 요요마(첼로) 등이 그의 곡을 즐겨 연주하며 20세기의 새로운 고전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최근 피아졸라의 인터뷰와 콘서트 장면을 담은 영상물 ‘더 넥스트 탱고’(DVD·유니버설뮤직)이 국내 출시됐습니다. 서울바로크합주단은 11일 연주회에서 후반부 ‘천사의 죽음’ ‘항구의 여름’ ‘탱고 콘체르토’ 등 피아졸라의 음악을 연이어 들려줍니다. 뜨거운 늦여름과 서늘한 초가을이 교차하는 요즘, 탱고의 계승자인 동시에 혁신자이기도 했던 피아졸라의 곡만큼 계절에 어울리는 음악도 없을 것 같네요.

▶서울바로크합주단 9월11일 오후8시 예술의전당 (02)592-5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