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 예방주사

〈제1보〉(1~17)=승부세계는 비정하지만 정직하다. 학력을 위조할 필요도 없고, 정치인들처럼 자신의 능력을 과장해야 할 이유도 없다. 로비도 텃세도 발붙이지 못한다. 오직 승패 결과만이 모든 것을 명료하게 판정해주는 철저한 실력 사회. 그래서 어린 소년들에겐 특히 낙원 같은 곳이다. 말(言)이 불필요한 세계에서 그들은 오직 손(手)으로 말하며 가슴에 품은 꿈을 현실로 만들어간다. 이 청년도 그런 과정을 거쳐 이 자리에 앉았다. 온소진. 21세.

초반 템포가 빠르다. 5의 낮은 걸침은 약간 낯선 느낌. 아무래도 6의 한 칸 옆이 눈에 익숙하다. 7에서 포석감각의 시대변화를 본다. 10여 년 전만 해도 “참고도는 백의 중복이므로 실전보 6은 문제수”라고 비웃지 않았던가. 영구 불변일 것 같은 바둑이론조차 세월 따라 수시로 변한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다.

8은 대세점. 흑이 먼저 ‘가’로 눌러오는 수에 대한 ‘예방주사’이기도 하다. 9부터 16까지는 흔히 등장하는 정석. 다시 7분여 만에 17의 협공을 택했다. 백은 여기서도 즉각 착점을 결정한다. 신중하기 이를 데 없는 흑, 전광석화 같은 백. 둘의 초반 운석(運石)이 몹시 대조적이다. 야마시타의 다음 수는 어디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