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동 벼룩시장은 추억의 보물창고”

고가도로가 헐린 자리에 청계천이 살아나고 많은 가게들이 동대문운동장(축구장)으로 옮겨가자 사람들은 황학동 시장통이 자취를 감췄을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벼룩시장’ 혹은 ‘만물시장’이라 불리는 중구 황학동 시장통은 꿋꿋이 버텨나가고 있다.

70년대 ‘빽판’ 레코드와 ‘빨간 비디오’의 추억이 아련히 남아 있는 곳. 5일 오후 젊은 예술가 넷이 황학동을 찾았다. 화가 강상훈(30)씨, 설치미술가 유화수(29)씨, 사진가 이영(28)씨, 조각가 이경태(34)씨다. 이들은 중구 충무아트홀의 전시 프로젝트 ‘황학동-만물시장’의 작가 공모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 상위 입상자들로, 황학동은 이들의 ‘작품 재료’다. 황학동의 풍경을 사진·그림·설치미술·조각 작품으로 만들어 오는 12월 전시회를 가질 예정이다.

TV모니터와 오디오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골목을 지나 예술가들이 이른 곳은 중고 레코드점 앞. 화가 강상훈씨는 큼지막한 흰 종이를 길바닥에 깔고 녹색 테이프로 고정시켰다. 깨끗하던 종이는 할아버지가 탄 자전거 바퀴, 쟁반을 머리에 인 아주머니의 신발 등이 닿으며 온갖 무늬로 가득찼다. 이렇게 발자국 때가 묻은 종이를 캔버스로 삼아 지우개를 문질러 나가며 그림을 그렸다. 학창시절을 미국에서 보낸 그에게 황학동은 새로운 곳이다. “공모전 때문에 올해 처음 와봤어요. 과거의 소중한 모습들이 쌓인 보물창고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