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따라 가는 산행] 연인산

‘연인과는 사랑을 깊게 하고, 친구와는 우정을 돈독히 하고, 한번뿐인 인생은 건강하게 장수하자.’
인간이라면 누구나 소망하는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산이 있다. 바로 경기도 가평에 솟은 연인산(戀人山·1,068.2m)이다. 초가을에 가평 자라섬에서 재즈페스티벌을 즐길 예정이라면 축원이 깃든 연인산을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올라보자.

연인산은 한북정맥의 강씨봉(830m)과 청계산(849m) 사이에서 남동쪽으로 갈라져 나온 ‘명지지맥’에 솟아 있는 산이다. 연인산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산줄기엔 우정봉(910m), 남동쪽엔 장수봉(881m)이 좌청룡 우백호인양 버티고 있는데, 이 봉우리들이 모두 연인산 도립공원에 속한다.

정상까지 최단 거리인 백둔리 코스

연인산 등산코스는 북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주능선 동쪽의 백둔리·승안리, 서쪽의 상판리·마일리에서 오르내리는 코스가 여러 갈래 나 있다.
탐방객은 동쪽이 훨씬 많은데, 백둔리에서는 소망능선·장수능선, 승안리에서는 용추계곡과 이어지는 청풍능선·연인능선을 경유해 정상에 오르는 코스가 인기 있다.

연인산이 품고 있는 계곡은 어디나 맑고 깨끗하지만, 용추계곡은 풍치도 좋아 등산인뿐만 아니라 피서나 산책을 위해서도 많이 찾는다.
 
여름이라면 용추계곡쪽으로 연인산 정상을 올라도 좋겠지만, 초가을에 열리는 자라섬 국제 재즈페스티벌에 참여하려면 아무래도 가족이나 연인과 동행할 테니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산행시간도 짧은 백둔리 코스를 잡아보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백둔리 깊은골 입구의 연인교 버스정류장이 산행 시발점이다. 하지만 승용차를 갖고 접근한다면 연인교를 건너 백둔분교터 앞을 지나 연인산매점 앞 주차장까지 간다. 승용차는 이곳서부터 연인제일산장 앞의 300m에 이르는 구간에 대는 게 좋다. 연인제일산장 앞에서 다리를 건너 산쪽으로 가는 비포장도로가 있으나 길이 거친 편이니 사륜구동이 아니면 아예 건너지 말자.

다리를 지나 5분쯤 걸으면 자연학교 앞을 지나고, 5분 더 들어가면 오른쪽 둔덕 위에 하얀 건물 한 채가 보인다. 이 건물을 지나 5분 더 가면 ‘연인산 소망능선 2.7km, 장수폭포 1.1km’ 팻말이 있는 갈림길이다. 양쪽 길 모두 30분쯤 걸은 뒤 2층 외딴집에서 다시 만난다. 왼쪽은 완만하며 너른 길이고, 오른쪽은 조금 가파른 산길이다. 따라서 어느 쪽 길로 가나 마찬가지지만 일행 중에 노약자가 있다면 수량 풍부한 계곡에 폭포도 있는 왼쪽 길이 훨씬 낫다.

‘도대체, 이 비는 언제 그치려나.’

장마가 끝났다고 한 지가 한참 지났는데도 여름 내내 비가 하루도 빠짐없이 내렸다. 연인산을 찾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산 아래쪽은 비가 내리지 않았지만, 정상쪽은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었고, 이따금 빗방울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러니 넋두리가 흘러나오지 않을 수 없다.

왼쪽 길을 택해 15분쯤 걸으면 10m가 조금 넘을 듯한 와폭이 보인다. 산행 후 여기서 몸을 식히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폭포 옆에 떡 버티고 있는 살모사 한 마리를 보니 나니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폭포 아래에서 다리를 건너 10분 정도 오르면 용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2층집에 닿는다. 2층집 앞에서 왼쪽 잣나무 숲속 사면길로 50m 정도 오르면 아까 초입에서 갈라졌던 길을 다시 만나는 합류지점. 삼거리엔 ‘연인산 1.8km, 장수폭포 2km’ 팻말이 세워져 있다. 실질적으로 소망능선의 시작점인 것이다.

산길로 들어서니 철쭉나무가 많이 보인다. 이 철쭉나무들은 연인산의 이름을 전국적으로 알린 일등공신이다. 연인산은 매년 봄마다 철쭉제가 열릴 만큼 철쭉나무가 많다. 산 정상 부분의 능선뿐만 아니라 초입서부터 산길 곳곳에 철쭉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연인산을 유명하게 한 철쭉나무 군락

연인산은 철쭉 피는 봄뿐만이 아니라 사시사철 탐방객이 많다. 특히 수도권 주민들의 피서지로 이름이 높아 여름이면 맑고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계곡엔 피서객들로 붐빈다. 승안리 용추계곡, 백둔리 장수골, 상판리계곡 등이 명성 높다. 물론 가을 단풍과 겨울 설경도 빠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수도권에서 당일로 여유롭게 다녀올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리라.

산길은 조금 가파르긴 해도 위험하진 않다. 그래도 중간중간엔 안전을 위해서 밧줄을 묶어 놓았다. 오늘처럼 땅이 젖은 날은 제법 요긴하게 쓰인다. 이렇게 산길을 40여 분 올라 소망능선 삼거리(879m봉)에 닿았다.

여기서 잠시 숨을 고른 다음 정상을 향해 걷는다. 연인산은 도립공원답게 이정표가 잘 설치되어 있다. 갈림길마다 예외 없이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외길인 능선길에도 200m마다 이정표가 있어 길 잃을 염려는 거의 없다. 소망능선 삼거리에서 정상을 향해 가다 수량이 풍부한 장수샘에서 목을 적신 후 15분쯤 가니 왼쪽으로 연인능선이 갈리는 삼거리가 나타난다. 왼쪽의 연인능선 길로 가면 용추계곡으로 내려설 수 있다.

드디어 연인산 정상. 초입의 연인제일산장 앞에서 이곳까지 2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큼직한 표석이 있는 정상은 원래 조망이 아주 빼어난 곳이지만, 오늘은 먹구름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연인산의 원래 이름은 우목봉

수도권 등산인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연인산의 원래 이름은 우목봉(월출봉)이었다. 1999년 가평군에서 이곳을 새롭게 조성하면서 연인산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줬는데, 어느덧 본명은 잊혀지고 새로 개명한 연인산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름이 바뀐 것은 연인산뿐만이 아니다. 전패봉은 우정봉으로, 칼봉산은 칼봉으로, 구나무산은 노적봉으로 개명됐다. 그리고 능선·계곡·고개의 이름도 우정고개, 소망능선, 장수능선, 연인능선, 우정능선, 연인계곡 등으로 새로운 이름들로 불리고 있다.

구름 때문에 시야가 좋지 않아 조망을 즐기지 못한 게 못내 아쉽지만 이제는 내려가야 할 시간. 정상에서 내려가는 방법은 여럿이지만, 오늘은 원점회귀산행을 하기 때문에 소망능선 삼거리까지 되짚어 내려간 다음, 장수봉~송학산~장수고개를 거치기로 한다.

정상에서 20여 분만에 내려선 소망능선 삼거리에서 잠시 숨을 고른 다음 장수능선을 따른다. 10분만에 청풍능선 갈림길을 지나면 이어 아름다운 구상나무 군락이 반기고, 잣나무숲을 끼고 좀더 걸어가면 송학산(705m) 정상이다.

송학산 정상의 조망도 아주 좋다. 동쪽으로는 바른골봉과 노적봉이 가깝고, 남동쪽으로는 용추계곡 상류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너머로는 칼봉도 손가락 끝에 걸려드는 자리다. 역시 오늘은 아무 것도 볼 수 없어 아쉽다. 하지만 재즈페스티벌이 펼쳐지는 초가을엔 날씨가 좋은 날이 많으니 조망 걱정은 붙들어 매도 좋을 듯하다.

송학산에서 장수능선 길로 20분쯤 내려서면 장수고개. 이곳은 백둔리와 이어진 임도를 비롯해서 동쪽 바른골봉(795m) 방면 능선길, 바른골봉 남쪽 사면 임도, 남쪽 구라우골 MTB코스, 그리고 장수능선 남쪽 임도와 연인산 정상 방면 장수능선길이 만나는 지점이다. 산행 종점인 백둔리로 가려면 이제 임도를 따라 북쪽으로 내려서기만 하면 된다.

S자로 굽도는 임도를 30~40분쯤 내려가면 연인산매점이 나온다. 하지만 다리를 건너기 전, 초가을이라 해도 산행 후에는 땀이 많이 났을테니, 맑고 시원한 계류에 탁족이라도 하면 어떨까.

/ 글·사진 민병준 르포라이터

산행길잡이

연인산은 이름처럼 부드러운 편이다. 가파른 구간에 밧줄이 설치되어 있으나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 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은 산행 시간이 길어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이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다.

등산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백둔리의 연인교~자연학교~소망능선~정상~소망능선~연인교 회귀 코스가 약 10km로 5시간 정도 걸린다. 올라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는 게 싫다면 연인산 정상에 오른 뒤 소망능선 삼거리~장수봉~장수능선~송학산~장수고개~연인교 원점회귀 코스를 걷는 것도 괜찮다. 이 코스는 약 12km로 6시간 내외가 걸린다.

승안리 용추계곡 방면에서는 버스종점(공무원휴양소 주차장)~칼봉산쉼터~내곡분교터 삼거리~청풍능선~장수능선~정상 코스가 약 9km로, 4시간30분 소요된다. 버스종점(공무원휴양소 주차장)~칼봉산쉼터~청풍계곡 갈림길~도토지 삼거리~MTB 푯말 임도~연인능선~정상 코스는 약 11km로, 5시간 소요된다. 두 코스 모두 하산하는 데는 3~4시간 걸리니 용추계곡쪽에서 연인산 정상까지 왕복 산행 시간은 총 7~8시간을 잡아야 한다.

교통

자가운전 서울→46번 국도→구리→남양주→청평→가평(좌회전)→75번 국도→북면→백둔교(좌회전)→백둔계곡→연인교(좌회전)→연인산매점 앞 안내판.
가평→백둔리 군내버스가 매일 4회(09:45~19:30) 운행. 연인산 입구 깊은골 1,900원, 종점 2,000원. 약 30분 소요.
가평→승안리(용추계곡) 군내버스가 매일 9회(06:50~19:40) 운행. 15분 소요, 요금 850원.

숙식

백둔리의 연인교에서 자연학교 사이에 숙식할 곳이 아주 많다. 연인벨리(031-582-6568), 별을 헤는 마을(582-9569), 샘터유원지(582-4184), 연인산 민박(582-0653), 고인돌산장(582-7871), 연인제일산장(582-8240), 연인산매점(582-0720), 폭포유원지민박(582-0638) 등이 있다.
승안리 용추계곡에도 연인산농원(582-4888), 하늘맑은집(582-7007), 황토방민박(582-9004), 용추밸리하우스(582-5116), 용추자연휴양림민박(582-9068), 가래나무민박(581-7733), 털보네민박(582-4930), 용추민박(582-8510) 등 숙식할 곳이 많다. 가장 상류에 있는 끝집은 칼봉산쉼터(582-7488~9)다. 민박료는 80,000~120,000원. 토종닭백숙(35,000원) 등을 맛볼 수 있다.
연인산에 대한 좀더 자세한 정보는 주민이 운영하는 연인산 홈페이(www.yeoninsan.com) 참조.

별미

가평은 잣의 고장이다. 어디를 가나 짙은 녹색의 잣나무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잣을 원료로 한 ‘가평 잣막걸리’는 1997년 청와대 납품을 통해 전통주로 인정받았고, 과천에서 열린 ‘세계 마당극 큰잔치’ 공식 막걸리로 지정되면서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졌다. 또 1996년엔 경기도에서 주최한 전통주 품평회에서 경기 5대 명주로 선정되면서 국내 최고 품질의 전통주 반열에 올라섰다. 애주가들은 ‘잣막걸리의 첫맛은 쌉싸름하지만 마무리는 꿀참외 맛이 난다’고 평가한다. 산행 후 하산주로 더없이 좋다. 가평 명주술도가 전화 031-582-2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