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생활에 적응 못하는 젊은이들의 좌절 그려

‘방황의 날들’은 12세에 LA로 건너가 성장한 김소영 감독의 자전적인 장편 데뷔작이다. 그녀의 단편 ‘불타는 토끼’는 왕가위 감독과 콤비를 이뤘던 촬영 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이 촬영을 맡아 화제가 됐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90년대 중반 이후 미국 사회에 떠오르는 아시안계 작가와 감독들의 급부상이 놓여있다. 이창래(한국), 줌파 라이히(인도)와 같은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들은 아메리카에 적응하지 못하는 방황하는 인물들을 통해 새로운 화두를 제시했다. 김소영의 영화에서도 그러한 기운을 발견하게 된다.

‘방황의 날들’의 주인공 에이미 역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10대 소녀다. 그녀는 낯선 땅 미국에서 엄마와 단 둘이 산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영어 학원에 다니지만 말들이 낯설기만 하다. 엄마와는 최소한의 대화만 나눈다. 그러나 한국에 있는 아빠에겐 “아주 잘 지내고 있다”는 편지를 써 보낸다. 언어의 벽은 거짓말과 침묵을 낳는다. 에이미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벽을 느낀다. 여자 친구와 헤어진 트란과 함께 다니면서 서서히 연정을 갖게 되지만 낯선 땅의 문화는 주인공에게 부담을 준다.

이방의 나라에서 젊은이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은 ‘방황의 날들’만의 소재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비전문배우들을 과감하게 기용하면서 감독과 배우들 자신의 고백을 토로하는 것과 같은 진정성을 보여준다. 김소영 감독은 자주 주인공들을 클로즈업으로 잡아낸다. 화면을 채우는 주인공의 얼굴은 낯선 미국 사회에서 고립되어 있고, 홀로 갇혀 버린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또 한 가지 눈여겨 볼 점은 이야기가 한참 고조되는 순간 필름을 잘라버리듯 갑자기 멈추어 버리는 결말부이다. 이러한 마무리에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감독의 철학이 가장 잘 보이는 선택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방황의 날들’은 잘 짜여진 이야기보다는 에이미의 혼돈스러운 감정 그 자체를 드러내기 위해 화해하거나 마무리 될 수 없는 마음의 상태를 결말로 제시하는 셈이다.

이러한 스타일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해 미국의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LA영화제 ‘평론가 베스트7’에 선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베를린영화제에서도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하였다. 그 외에도 여러 도시에서 열린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다. 이러한 결과는 에이미의 경험이 오늘날 전 세계 도시에서 벌어지는 보편적인 문화 현상임을 역설하고 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