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ABC] 협주곡 3곡 연속 연주 ‘괴력’

2002년 프랑스의 라 로크 당테롱(La Roque D’anth?ron) 피아노 페스티벌에 한달 간 90여 명의 피아니스트가 참가해서 유례 없는 ‘피아노의 향연’을 펼칩니다. 1990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자인 러시아의 보리스 베레조프스키(Boris Berezovsky)도 이 페스티벌에 초청 받았습니다.

‘건반 위의 사자’로 불리는 그가 선택한 곡은 까다로운 기교로 악명 높은 리스트의 ‘초절 기교 연습곡’입니다. 슈만은 “이 연습곡을 제대로 재현해낼 수 있는 사람은 리스트 자신뿐일 것”이라고 말했지요.

첫 곡 ‘전주곡’부터 그의 콧등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옵니다. 건반을 질주하는 도중에 가볍게 고개를 흔들며 땀방울을 떨어뜨립니다. 한 곡 한 곡 지날 때마다, 베레조프스키의 등에 차오르는 땀의 농도도 점점 짙어 갑니다.

당시 실황 영상에는 베레조프스키의 강한 타건에 피아노 줄이 끊어지는 장면이 부록으로 담겨있습니다. 그가 연주를 멈추고 일어나 피아노를 살피자, 영문을 모르던 관객들도 베레조프스키의 무시무시한 힘에 박수를 보냅니다.

‘건반 위의 사자’에게도 수줍은 시절은 있었나 봅니다.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 직후인 1991년 발표한 쇼팽의 ‘연습곡’ 음반 사진에는 더벅머리의 당시 22세 청년 피아니스트가 팔짱을 끼고 어색한 표정으로 웃고 있습니다.

베레조프스키는 14년 뒤에 고도프스키가 편곡한 쇼팽의 ‘연습곡’을 쇼팽의 원곡과 함께 다시 실황으로 나란히 녹음해 각종 음반상을 거머쥡니다. 때로는 “너무나 어려운 곡을 너무나 쉽게 치는 것이 유일한 단점”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베레조프스키는 연주와 녹음에서 모두 도전을 불사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가 오는 15일 ‘러시안 협주곡의 밤’에서 러시아 작곡가의 피아노 협주곡 3곡을 연달아 연주합니다.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쇼스타코비치의 협주곡 2번, 프로코피예프의 협주곡 3번 등 어느 한 곡도 연주하기가 쉽지 않은 레퍼토리들입니다.

2003년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5곡) 콘서트에 이어, 지난해에도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곡을 한 무대에서 소화해서 “연주회 끝나면 지하철 끊길까 두렵다”는 원망 아닌 원망을 듣기도 했습니다. 화려한 기교와 강력한 타건으로 3곡을 잇따라 요리해낼 ‘사자’의 솜씨에 다시 한 번 막차 걱정을 해야 할 것 같네요.

▶15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4만~10만원 (02)541-6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