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억 규모 아트펀드 3시간만에 ‘매진’

영국의 세계적 아트펀드회사인 ‘파인아트펀드’의 필립 호프먼 회장은 지난 5월 방한했을 때 “한국에는 미술시장 규모에 비해 아트펀드가 많아 놀랐다”고 했다. 한국을 자주 찾는 런던의 갤러리 ‘헌치 오브 베니슨’의 매튜 케어리-윌리엄스 디렉터는 “한국의 아트펀드는 갤러리들이 운용해 이상하다. 갤러리는 자기들이 다루는 작가의 값을 올리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아트펀드를 운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에는 지난 1년 동안 아트펀드 4개가 각각 75억~120억 원 규모의 사모펀드로 나와 100% 판매됐다. 120억 원 규모로 나온 A 아트펀드는 세 시간 만에 판매가 완료됐다. 그런데 이 펀드의 운용계획서에는 “반드시 본 자료에 따라 사업이 진행된다는 보장이 없다”고 명시돼 있다. 이 계획서를 검토한 한 펀드 애널리스트는 “펀드운용 계획서에 ‘운용방법이 달라질 수 있다’고 명시하는 것은 다른 일반적 금융자산 펀드들과 다른, 투자자에게 불리한 내용이다”라고 했다.

펀드 운용사들이 제시하는 작품 구매 리스트는 화려하지만 이 역시 의문을 불러 일으킨다. A 펀드와 B 펀드는 운용계획서에서 게하르트 리히터, 로이 리히텐스타인, 신디 셔먼, 왕광이, 대미언 허스트, 김환기, 이우환 등 국내외 블루칩 작가들 이름을 구입작품 포트폴리오로 제시한다. 김순응 K옥션 대표는 “100억 원 정도로 이 계획대로 작품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겉으로만 유명 작가를 내세우고 실제로는 운용을 맡은 화랑이 다루는 작가를 사서 값을 올리는 것이다”고 말했다.

미술시장 호황으로 투자에 날개가 돋쳤지만, 이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시각문화정책연구원은 ‘월간미술’ 이달 호에 낸 글에서 “마치 미술품을 구입하고 소장하면 (무조건) 큰돈이 될 것처럼 현혹하는 일부 화상의 광고나 주장은 믿을 만한 것이 결코 못 된다”고 지적했다. 정준모 한국시각문화정책연구원장은 “미술사적으로 중요하거나 권위 있는 미술관 전시를 하는 등 특별한 근거가 없이 괜히 값이 오른 작가들이 적지 않다”며 “미술시장의 공개된 정보는 부족한데 투자에만 날개가 돋친 격이라 걱정이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새로 생겼거나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경매회사도 최소한 8개나 된다. 서울의 가구수입업체인 엠포리아가 만든 ‘D옥션’, 대구 MBC가 만든 ‘옥션M’, 전주의 솔화랑이 만든 ‘A옥션’, 고미술 전문경매회사인 동예헌이 이미 경매를 시작했다. 미술협회 작가들이 중심이 돼 만든 ‘오픈옥션’이 올해 안에 경매를 할 예정이고, 로또사업자였던 KLS도 지난달 경매사 ‘인터알리아’를 설립했다. 또 온라인경매로 ‘메가아트’가 새로 생겼고 부산의 미술 쇼핑몰인 ‘아르바자’가 온라인 경매를 준비하고 있다. 최병식 경희대 교수는 “미술경매가 다각적인 경쟁 체제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다”며 “하지만 과열 경쟁으로 공정성과 투명성의 정도를 넘어서거나 인기 작가 이름에만 집중하는 양상은 시장의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 있어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