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천에 예술이 흐른다

12일 오후 서울 은평구 불광천변. 한가로운 하천 풍경에 “윙~ 위잉” 기계음이 울려퍼졌다.일자형으로 흐르던 물살이 작은 모래톱·수풀과 만나는 와산교~증산2교 사이 징검다리에서다. 커다란 돌 앞에 쪼그려 앉은 스물 여덟 동갑내기 조각가 차명원·장은석씨는 바위위에 흰 색으로 스케치된 참게와 오리 등 밑그림에 조각 도구인 ‘에어툴’을 들이대고 조심스럽게 그림 모양대로 새겨나갔다.

푸른 체육복을 입고 하교하던 연은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들이 징검다리로 쪼르르 달려들었다.

“아저씨. 이 게랑 새 그림 직접 그리신 거예요?”

“아니. 너희 또래 친구들이 그렸어.(차명원)”

“아저씨들은 그걸 돌에 새겨주는 거야.(장은석)”

북한산 기슭의 물줄기로 시작해 한강으로 흘러드는 불광천 곳곳에서 뭔가를 그리거나 만드는 예술가들의 작업이 한창이다. 이미지 행동집단 ‘레드 안테나’가 지난 7월부터 벌이는 이 작업은 ‘불광천 공공미술 프로젝트 ― 불광천에 물 오르니 미친 흥(興)이 절로난다’. 조각가·화가·설치미술가 등 14명이 참가하고 있다. 서울시가 주민 삶의 수준과 동네 품격을 높이기 위해 예술가들과 함께 도시 곳곳을 벽화와 조각 등 예술작품으로 꾸미는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중 하나로, 하천을 무대로 하기는 처음이다.

왜 불광천일까? 예술가들은 “불광천에는 서울의 다른 샛강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박수진(여·40) 큐레이터는 “불광천은 그저 잘 가꾼 하천이 아니라 주민들 삶의 일부”라고 말했다. “저기 좀 보세요. 버스 정류장으로 가려고 징검다리를 건너는 아저씨. 할아버지의 휠체어를 미는 할머니, 원두막에 앉아 쉬고있는 아주머니들…”

불광천변 양옆으로는 고만고만한 높이의 다세대 주택과 아담한 빌딩들이 손에 잡힐 듯 오밀조밀 서있고, 지하철 6호선역(응암·증산·새절·수색)과 버스 차도가 물길과 나란히 달린다. 산책길이자 등하교·통근길인 셈이다. 이중 사람 발길이 가장 많이 몰리는 은평구 응암·신사·증산동에 걸친 신응교~와산교~증산2교 일대를 이번 프로젝트의 주 무대로 삼았다.

지난 7월말 나흘동안 열린 생태탐험 캠프에서 동네 어린이 200여명은 불광천 곳곳을 둘러보며 풍경을 그리고, 물풀·물벌레 등을 채집·관찰했다. 지난 주말에는 100여명이 참여한 어린이 그림 대회도 열렸다. 행사에서 아이들이 그린 참게와 꽃, 새들이 조각가들이 바위에 새기는 밑그림이 됐다. 신응교 윗쪽 분수대 계단 역시 어린이들이 그린 물고기나 나무 그림을 예술가들이 타일에 새겨 붙이는 작업이 한창이다.

천변으로 즐겨 나오는 어르신들을 위해서는 지난달 신응교 밑에 널찍하고 깨끗한 평상을 놓았다. 이곳에는 지난 주말부터 ‘장기 토너먼트전’이 벌어지고 있다. 하루종일 ‘아마추어 고수’들로 북적인다.

와산교 다리 밑에서는 구리코일을 둥글거나 각지게 여러가지 모양으로 감아 만든 조명등(燈)을 매다는 작업이 한창이다. 곧 큼지막한 스크린도 걸고 야외 무대로 꾸민다. 이마에 흥건한 땀을 닦던 민정수(여·43) 작가는 “다리 밑에서 작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여느 전시공간 못지 않게 멋지다”고 말했다.

뭔가 하고 유심히 보기만 하던 주민들은 이제 “언제 끝나냐”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응암동 주민 이우창(62)씨는 “보기 좋게 가꾸는 것도 좋지만 방치되지 않도록 간수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풀숲에서 쑥을 캐던 한 할머니도 “똥물만 흐르던 개천이 몇년새 많이 변했다”며 흐뭇해했다.

모든 작업이 마무리되는 오는 10월 둘째 주에는 예술가들과 주민들이 어우러지는 축제 한마당이 벌어진다. 장기 토너먼트전은 준결승과 결승전을 잇달아 열어 ‘은평의 장기왕’을 뽑고, 하천변 무대에서는 주민들과 작가들이 어우러지는 노래교실과 그림자 놀이 등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