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크너의 내면엔 신의 소리 담겨있어”

첫 공연 작품도 악보 첫 페이지에 ‘나의 사랑하는 신에게’라고 적혀있는 미완성 교향곡 9번을 택했다고 했다.

브루크너 교향곡을 연주하기 앞서 부딪쳐야 할 난관도 적지 않다. ‘바그너 튜바’를 비롯해 관악의 중요성이 큰데다, 작품마다 여러 편의 판본이 존재한다. 하지만 임헌정씨는 “판본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고집하는 것은 마치 성경을 한 구절도 바꿔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신학자와 비슷하다. 성서를 통해 진정한 메시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처럼, 브루크너의 내면에 다가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첫 곡인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은 부천에 이어 11월 2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도 다시 연주한다.

지난달 부천 필하모닉의 지휘자 임헌정씨는 작곡가 브루크너의 고향인 오스트리아 린츠를 찾았다. 가톨릭 신도였던 작곡가가 오르가니스트로 봉직한 성 플로리안 성당의 문을 열자, 때마침 경건한 오르간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최후의 미완성 교향곡인 9번을 작곡하면서 브루크너는 자신의 시신을 이 성당 지하실에 안치해달라는 유서를 남겼다. 브루크너가 묻힌 석관을 바라보면서 임헌정씨는 “음악은 상상력에서 태어나며, 상상력은 인간의 중요한 특권이다. 조용히 성당에 앉아 있으니 마치 그의 음악이 들리는 듯했다”고 기억했다.

국내 교향악단 가운데 처음으로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를 마친 부천 필하모닉이 다음달부터 브루크너 교향곡 장정에 들어간다. 10월 5일 부천시민회관에서 열리는 교향곡 9번을 시작으로, 만 2년에 걸쳐 교향곡 전곡을 조명하는 것이다. 내년 창단 20주년을 맞는 부천 필하모닉의 ‘자축(自祝) 음악 파티’이기도 하다.

“말러가 여전히 지속적으로 신을 찾고 있다면, 브루크너는 이미 신을 찾은 작곡가다.”

왜 말러에 이어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택했는지 묻자, 임헌정씨는 지휘자 브루노 발터의 말을 인용했다. 웃음과 함께 “언젠가 그런 질문이 나올 줄 알고 지금까지 발터의 대답을 간직하고 있었다”고도 했다.

베토벤과 브람스에 이어 독일 교향악의 전통을 이어간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녹음한 지휘자들은 적지 않다. 조금은 과장이 섞여있는 카라얀도, 강렬한 인상을 주는 오이겐 요훔도, 느리면서도 사색적인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도 모두 의미 있지만, 임씨는 “나이가 들수록 큰 소리로 외치지 않으면서도 작곡가의 내면에 다가가는 연주가 다가온다”고 말했다. 숨을 거두기 전까지 브루크너 교향악에 몰두했던 명 지휘자 귄터 반트를 예로 들며 임헌정씨는 “지휘자라면 젊을 때는 누구나 멋있게 보이고 싶다는 유혹에 빠진다. 하지만 갈수록 억지로 쥐어짜거나 청중에게 강요하기보다는 담백하게 그려내는 것이 좋아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