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기독교에 대한 물음, 작품으로 표현”

작곡가 이건용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는 어릴 적, 집에서 종교와 음악을 함께 배웠다. 예수교 장로회 목사의 넷째 아들인 그는 매일 아침, 집에서 열리는 예배에서 찬송과 성서 읽기, 기도를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찬송가는 형제가 함께 4성부로 불렀다. 이 교수는 “당시엔 너무 어려서 예배를 빼먹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돌아보면 화성법과 청음 교육을 자연스럽게 받은 셈이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가 마태·마가·누가·요한 복음을 바탕으로 수난곡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작곡했다. 신약의 4개 복음에서 고른 노랫말과 함께 직접 쓴 시(詩)를 수난곡에 녹여 넣었다. 오는 18일 오후 7시30분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초연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직을 마친 뒤, 본업인 작곡가로 돌아와서 내놓은 ‘복귀작’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다룬 수난곡은 바로크 시기에 바흐와 하인리히 쉬츠가 즐겨 작곡했다. 이 교수는 “바흐의 수난곡에는 18세기 루터교의 심성과 정신이 그대로 담겨있다. 우리 시대의 기독교는 어떤 문화적 자신을 지니고 있는지 작품을 통해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존의 수난곡이 하나의 복음서에 바탕을 두고 작곡하는 것과는 달리, 이번 수난곡에서 이 교수는 4개 복음에서 고르게 구절들을 골라 썼다.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장면은 요한복음에서, 최후의 만찬 장면은 마가복음에서 가져오는 방식이다.

이 교수는 “복음마다 조금씩 빠지거나 더하는 대목이 있기 때문에 한 복음만 따라가면 놓치는 장면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주요 장면을 모두 추려놓은 수난곡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복음의 구절을 고르다 보면 당초 복음의 의도를 희석할 우려는 있지만, 일부러 살을 더하거나 빼지는 않았으니 주님께서도 화 내시지는 않을 것 같다”며 웃었다.

이 교수가 음악 감독을 맡고 있는 합창단 ‘음악이 있는 마을’이 수난곡을 초연한다. 그는 “이 곡이 매년 수난절 기간마다 울려 퍼졌으면 하는 것이 작곡가로서 소망”이라고 말했다. 공연 문의 (02)730-6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