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거장은 항상 눈을 감고 지휘했을까

두 눈을 감고 지휘하는 모습은 지휘자 카라얀의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음악이 울려 퍼지는 내내, 고개를 숙인 채 심각한 표정으로 지휘봉을 휘두르는 모습은 일종의 ‘신비감’마저 안깁니다. 하긴 상대가 ‘천하무적 베를린 필’이라면 굳이 눈을 뜰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지만요.

가끔은 궁금증도 생깁니다. 단원들의 연주를 보지도 않고 어떻게 지휘할 수 있는 걸까요. 농구 감독은 작전 타임이라도 걸 수 있고, 축구 감독은 전·후반전 사이에 휴식 시간이라도 있지만 음악 감독은 연주 중간에 휘슬을 불거나 멈출 수 없습니다. 혹시라도 연주가 맘에 들지 않으면 실눈을 뜨고서 연주자를 향해 찡그리기라도 하는 걸까요.

비밀은 리허설에 있습니다. 곡의 연주와 해석에 대해 사전(事前)에 단원들과 교감을 충분히 나누고 연습을 마친 뒤에 무대에 오르는 것이지요. 실수가 있더라도 뮤지컬이나 오페라 공연 도중에 흐름을 끊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카라얀의 리허설 장면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DVD·이클라세)이 최근 국내 소개됐습니다. 슈만 교향곡 4번과 베토벤 교향곡 5번의 리허설과 실연을 담은 영상물의 첫 장면부터, 카라얀은 두 눈을 버럭 뜨고서 리허설 도중 수다스러울 만큼 꼬치꼬치 지시를 내립니다. “도입부는 처음부터 강렬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에 밀어붙이지 말고 호흡을 길게 가져가세요” “제1 바이올린 파트는 플루트 소리를 전혀 듣지 않고 있군요”….

연주장에서 평소 근엄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카리스마 카라얀’ 대신, 리허설에서는 조금이라도 맘에 들지 않으면 가차 없이 연주를 중단시키고 같은 대목을 몇 번씩이나 반복하는 ‘꼬장꼬장 카라얀’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실제 연주가 완성된 영화 필름이라면, 리허설은 치열한 촬영 현장과도 비슷합니다. 곡에 대한 해석과 접근뿐 아니라 지휘자의 성격과 버릇까지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커튼을 열어 젖히고 무대 뒤를 엿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카라얀은 리허설 촬영을 “청중에 대한 일종의 고해 성사”에 비유합니다. “단지 무대에 서서 지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악보에서 의미를 찾아내서 단원들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전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리허설 도중에 단원들에게 “좋은 기술만으로는 훌륭한 음악이 나오지 않는다. 완벽할 만큼 악보에 충실해야 한다”고 잔소리하는 그의 모습에서 음악에 대한 엄격한 자세를 볼 수 있습니다. 리허설의 매력에 빠진다면 토스카니니·푸르트벵글러·발터·카라얀·번스타인 같은 마에스트로의 지휘 장면을 모아놓은 영상물 ‘지휘의 예술(The Art of Conducting·워너뮤직)’로 한걸음 더 나가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