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산행코스] 갈전곡봉

예나 지금이나 양양에서 홍천, 홍천에서 양양으로 넘나들던 이 구룡령을 두고 갈천리 주민들은 ‘가짜 구룡령’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옛날 통일신라 때 선림원지를 찾은 최치원이 넘고, 의상대사가 넘나든 진짜 구룡령 옛길은 어디일까? 

“용 아홉 마리가 산주령을 따라 올라 하늘로 등천하려 했는데 부정 타 벌 받아 강철이란 괴물로 변했단 말이요. 이로 인하여 조상님들은 구룡령이란 산길을 지명으로 불러왔오.”

“일정 때 생긴 지금 자동차가 다니는 구룡령은 본래 이름이 장구목이요. 장구목이 어떻게 구룡령으로 둔갑했는지 모르겠소. 본래 구룡령은 옛날 말을 타고 과거 보러 다니던 길이요. 옛 구룡령은 어려서부터 한이 맺힌 길이요. 육이오 때 내 이 길을 넘어 대구까지 피난 갔다 왔오.”

“옛날 구룡령 근처는 본래 철광이 있었오. 조상들이 우연히 모닥불을 놓다보면 자연적으로 불바닥에 철이 녹아나와 조상들이 이 때부터 농작도구를 직접 만들어 쓰기 시작했소. 옛날 양양에서 쓰는 농작도구 만드는 철은 모두 여기서 나갔오.”

“음력 팔월(8월9일)에 햇곡식 나면 내가 제주가 되어 새벽에 제수용 짐 지고 올라가 구룡령 산신각에서 산신제 지냈고, 이 일을 30년 넘게 지내오다가 지금은 마을 성황당에서 대신 지내오고 있소. 양양군내 120개 마을 중에서 이런 제를 전통적으로 지내온 마을이 남은 곳은 이곳 갈천리뿐이란 말이요.”

“내가 이 길을 안 알려주면 영영 묻힐 것 같아 마을주민들 설득하여 길을 내기 시작했소.”

갈천리에서 4대째(손주까지 치면 6대째) 살아오고 있는 심마니로 일생을 살아온  엄익환(嚴翼桓·71) 선생의 구룡령 옛길에 대한 얘기는 밤새 들어도 끝이 없다.

엄 선생의 발의로 시작된 구룡령 길 복원작업에는 갈천리번영회장을 맡고 있는 정선지(63)씨가 앞장서서 해결했다. 정씨는 동부산림청에서 숲해설가 교육을 받았을 정도로 자연 사랑이 지극하다. 정씨는 작년부터 주민들과 함께 낫과 삽을 들고 10여 차례 옛길을 오르내리며 길을 뒤덮은 풀과 산죽을 베어내는 작업을 거의 마무리지었다. 다소 가파르고 무너져내린 곳은 최대한 자연미를 살리기 위해 일체 시멘트를 쓰지 않는 방식으로 자연석으로 디딤돌 정도만 설치했다.

갈천분교에서 시작…2시간여면 고갯마루 닿아

구룡령휴게소 앞 버스정류소 삼거리에서 서쪽 다리 건너는 갈천약수로 가는 길이다. 삼거리에서 56번 국도를 따라 약 300m 가면 ‘구룡령휴게소 300m→’ 안내판 앞 삼거리에 닿는다. 이곳에서 오른쪽 좁은 농로를 따라 300m 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 오른쪽 작은 집은 김동하씨가 혼자 사는 곳이고, 왼쪽 길로 조금 떨어져 있는 집은 박동원씨 농가다. 박씨 부인이 예전 명개리쪽에서 가마 타고 구룡령 옛길을 넘어 이곳으로 시집온 마지막 세대다. 김동하씨 집 옆으로 난 길로 들어서면 옛 주막터가 반긴다. 옛 주막집에는 예쁜 주모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술 한 잔씩 걸치고 구룡령으로 향했다는 것이다.

주막터에서 징검다리를 건너면 숲속 사면으로 들어선다. 8~9분 오르면 산죽군락 사이로 들어선다. 산죽은 이미 구두솔처럼 일정한 높이로 베어져 있다. 이어 가파른 옛길은 지그재그로 이어진다. 힘을 아끼는 옛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길이다.

옛길을 따라 15분 가면 노송들이 하늘을 가리는 솔반쟁이에 닿는다. 기둥 둘레 2~3m에 200~300년생 노송 5~6 그루가 모여 있는 곳이다 예전에는 수십 그루가 있었으나 80년대 경복궁 복원공사 때 이곳에서 40여 그루나 베어갔다 한다.

케이블 콘크리트를 뒤로하면 곧이어 하늘이 트이며 묘 1기가 나온다. 묘반쟁이다. 묘반쟁이에는 다음과 같은 설이 전해진다. 옛날 홍천군과 양양군 경계가 확실하지 않던 시절 양쪽 원님이 양쪽에서 같은 시각에 출발하여 서로 만나는 곳을 군경계로 정하기로 했다. 그래서 양양원님은 한 발자국이라도 더 땅을 넓히려고 젊고 걸음이 빠른 젊은이를 대동하게 되었다. 이 젊은이 역시 애향심에 원님을 업거나 밀고 당기며 구룡령을 넘어 도착한 곳이 지금의 명개리 샘골이었다.

이 젊은이가 아니었더라면 군경계선은 지금의 백두대간이 될 판이었다. 군경계를 샘골까지 확보하는 데 성공한 기쁨을 안고 다시 양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진한 젊은이가 죽은 자리에 묘를 쓴 곳이 묘반쟁이다.

묘반쟁이를 뒤로하고 5부 능선에 다다르면 구룡령까지 딱 절반 거리라는 반쟁이고개에 닿는다. 주막이 있었던 반쟁이고개에서는 북으로 백두대간이 바라보인다. 여기서 잠시 쉬고 발길을 옮기면 곧이어 엄청 큰 소나무 그루터기 3개가 나타난다. 경복궁 복원공사 때 잘려나간 것들이다.

그루터기를 지나 7~8분 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잠시 옛길을 벗어나 오른쪽 광산길로 10분 가면 철광 1호굴에 닿는다. 일본인들이 철광석을 수탈한 현장인 철광굴은 평면 굴로 깊이가 약 100m다. 한 때 공비들이 아지트로 이용한 적도 있다고 한다. 철광 1호굴에서 머지않은 북서쪽 백두대간 방면에는 평면 굴 깊이가 각각 1km, 2km에 달한다는 2호굴과 3호굴도 있다.

1호굴에서 다시 구룡령 옛길로 되돌아나와 3 분 가량 오르면 횟돌반쟁이에 닿는다. 나무뿌리가 관짝을 뚫지 못하도록 관에다 바르는 회(灰)가루 원석인 횟돌을 채석하던 자리다. 더욱 울창한 숲길이 이어지며 산삼처럼 잎사귀가 다섯인 도깨비무채 군락 사이 옛길을 따라 15분 오른면 산죽군락 사이 사면 길로 이어진다. 사면 길로 3~4분 오르면 구룡령 옛길 고갯마루다.

고갯마루에는 ‘백두대간 생태조림’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 자리에 산신각이 있었다 한다. 옛날 이 고개를 넘어 한양으로 과거를 치르러 가는 길에 선비들이 합격을 기원하는 뜻에서 잠시 말에서 내려 절을 하고 갔다는 곳이다. 수 년 전까지 주춧돌 4개가 남아 있었는데, 갈전곡봉으로 가는 돌계단길 축조에 사용해 버렸다.

영서와 영동을 넘는 고갯길들은 통칭 ‘바꾸미길’로 불리기도 했다. 고구마 감자 옥수수가 동해안으로, 동해안에서는 오징어 명태 등 각종 해산물들이 고갯길을 넘어 교환됐다.

홍천땅 명지거리계곡은 옛길 흔적이 많이 사라졌고, 온통 숲으로 뒤덮여 있어 길 잃기 십상이고, 말을 타고 과거 보러가던 선비들이 말 탄 채로 낙수되는 물을 마셨다는 서서물나들과 그 아래쪽에 주막터와 약수터가 남아 있다고 정선지씨는 알려주었다.

취재팀은 내친김에 명지거리계곡 옛길을 답사해 보았다. 그러나 워낙 우거진 밀림 때문에 서서물나들과 약수터는 찾지 못하고 술병들이 흩어져 있는 주막터만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

구룡령 옛길을 편하게 탐방하려면 현 구룡령에서 서쪽 계단길로 들어가는 백두대간 길을 타고 35분 거리인 구룡령 옛 고갯마루에 이른 다음, 갈천약수 방면 내리막으로 하산하면 된다.

본격적인 등산을 즐기려면 갈천약수쪽에서 구룡령 옛길로 올라온 다음, 서쪽 갈전곡봉(1시간 거리)에 이르면 된다. 하산은 구룡령 옛길로 되돌아와 갈천약수쪽으로 하산하면 편하다. 또는 갈전곡봉에서 북쪽 백두대간 길로 약 2시간 거리인 왕승골 갈림길에 이른 다음, 동쪽 왕승골로 하산해도 된다. 이코스는 7~8시간이 소요된다.  

구룡령 옛길은 현재 양양군에서 문화재청에다 문화재 지정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 글·사진 박영래 객원기자

교통

서울→양양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30분 간격(06:00~21:00)으로 운행하는 속초행 이용, 양양에서 하차. 요금 17,400원. 3시간40분 소요 / 동서울터미널(전철 2호선 강변역)에서 1일 11회(06:50~18:30) 운행. 요금 17,400원. 3시간40분 소요.
인천→양양 1일 6회(07:10~18:40) 운행. 요금(속초) 일반 15,800원, 우등 23,400원.
양양→갈천리 1일 5회(08:10 홍천행, 11:00, 13:30, 16:00, 18:10) 운행. 요금 3,200원. 40분 소요. 08:10분 발 홍천행(15,000원)은 구룡령(4,500원)~내면(7,800원)~서석(11,100원)을 경유한다. 대한교통 033-433-1931.
갈천리→양양 1일 5회(07:00, 09:50 홍천 발, 12:30, 14:30, 17:00) 운행.
서울→홍천 동서울터미널(전철 2호선 강변역)에서 1일 52회(06:15~21:30), 상봉터미널에서 1일 33회(06:05~21:10) 운행. 요금 8,700원. 1시간50분 소요.
홍천→구룡령·갈천리 1일 1회(07:10) 운행되는 내면(창촌) 경유 양양행 버스(대한교통) 이용. 요금 명개리 9,400원, 구룡령 10,400원, 갈천리 11,800원.
홍천→내면(창촌) 시외버스터미널(033-432-7893)에서 1일 12회(06:45~18:40) 운행. 요금 7,200원. 직행 2시간30분, 완행 3시간 소요.
내면→명개리 1일 7회(06:30, 07:20 호암행, 09:00, 11:30, 13:30, 17:20, 19:00) 운행하는 내청도리행을 타고 명지거리 입구(외청도교)나 구룡령 입구 외청도리 삼거리에서 하차. 요금 2,200원. 30분 소요. 내면(창촌) 터미널(주유소) 033-432-6084.

숙식(지역 번호 033)

구룡령휴게소(대표 정선지·673-3334·011-361-1690), 심마니집(주인 엄익환·673-0887), 부엉이오토캠프장(주인 엄주현·011-294-2427), 약수골산장(673-2991) 등 이용.
구룡령휴게소에서 자연산 도토리묵(7,000원), 양양의 민속별미인 뚜거리탕(6,000원), 산채비빔밥(6,000원), 황태해장국(5,000원) 등을 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