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흥행 보름달’ 누가 띄울까

충무로 역사상 유례없는 주말이다. 무려 4편의 한국영화가 지난 수요일(12일) 한꺼번에 개봉했다.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 ‘두 얼굴의 여친’,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즐거운 인생’(가나다 순). 세 편의 영화가 동시에 개봉하는 것도 이례적인데, 사상 최대의 격전인 셈이다. 2주 뒤 추석대목을 노리고 개봉한 이 영화들은 모두 어느 정도 이상의 재미와 감동을 갖춘 수작들. 한정된 관객을 나눠야 할 제작사 입장에서는 재앙이지만, 선택의 수가 늘어난 관객 입장에서는 즐거운 고민에 빠진 주말이기도 하다.

▶김상진 감독의 코미디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은 김 감독 특유의 상황역전 코미디. 납치당한 국밥집 할머니(나문희)가 매정한 자식들에게 분노, 인질을 자처하고 몸값 500억 원을 스스로 받아낸다는 포복절도 희극이다. 한 방의 카타르시스는 조금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세대 불문의 보편적 웃음이라는 점에서는 네 편 중 가장 탁월하다. 15세 이상 관람가.

▶봉태규 정려원의 청춘영화 ‘두 얼굴의 여친’은 요즘 영화관객의 대종을 차지하고 있는 20대를 겨냥한 코믹 로맨스다. 이 네 편 중 가장 젊은 세대를 노리고 기획된 작품. 다중인격 환자를 연기하는 1인 3역의 정려원이 이 영화의 가장 놀라운 발견이다. 때로는 만화적 상상력이 치기 어린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데이트용 무비로는 손색없다. 역시 15세 이상.

▶하명중 감독 17년 만의 복귀작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감동에 무게중심을 둔 뭉클한 드라마. 이제는 초로(初老)의 작가가 된 아들이 곧 철거되는 자신의 옛집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재확인한다는 내용이다. 작가 최인호의 자전적 소설을 그의 20년 지기 하명중 감독이 연출하고, 직접 주연도 맡았다. 요즘 젊은 관객의 취향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가족용 추석영화로는 추천할 만한 작품.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은 ‘샐러리맨 판타지’라는 애칭을 붙여주기에 알맞은 휴먼 코미디. 처자식 먹여살리고 매일처럼 반복된 일상에 지친 40대 남자친구들이 대학시절 꿈이었던 밴드를 재결성해 젊은 날의 희망을 되찾는다는 드라마다. 비록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판타지지만, 스크린을 통해 전달되는 대리만족의 즐거움이 생생하다. 전체관람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