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TV프로그램-9월 23일] 영화 우주전쟁 外

우주전쟁

무력감과 공포를 느끼게 하는 스필버그의 지옥도

SBS 밤 9시 55분

스티븐 스필버그가 H. G. 웰스의 동명 원작 소설을 가지고 영화 ‘우주전쟁’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마도 이런 식의 영화를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단순하게 말해서 이것은 ‘미지와의 조우’나 ‘ET’ 같은 영화와 달리 정체를 분명히 알 수 없는 외계의 존재에 의해 지구가 침공받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다. 이럴 때 스필버그에 대한 모종의 인식을 갖고 있는 우리는 이제 이 영화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예상한다. 이를테면 지구인들이 힘을 합해 영광의 전쟁을 벌이겠구나 같은. 그렇다면 틀렸다. 다소 놀랍게도 ‘우주전쟁’의 스필버그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여기엔 할리우드식의 용감하고 현명한 영웅도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외계 존재에 대항한 멋있는 ‘전쟁’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우리 자신들의 무력감만을 경험할 뿐이다. 그것도 지독한 악몽 속에서 말이다.

아마도 수백만년 전부터 계획되었다고 하는 외계 존재의 침공이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다. 영화는 이로부터의 도주를 감행하는 결코 화목하지 않은 가족의 발걸음을 따라간다. 자연히 ‘우주전쟁’은 선의 힘보다는 악의 무차별적이고 파괴적인 힘에 강조점을 찍는 영화다. 그러면서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감지하게끔 한다. 주인공 레이와 그 가족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재난의 참상을 목격하게 된다. 파괴가 만들어낸 아비규환의 상황과 초현실주의를 방불케 하는 이미지는 지옥도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한편으로 흔히 ‘포스트 9/11 영화’라 불리는 영화는 이 엄청난 외부의 공포에 대해 인간은 얼마나 취약한가를 질문한다. 그건 곧 이 세계의 허약함에 대한 의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늘의 별을 보며 자란 이 ‘소년’은 이제 판타지의 외연을 조금 더 확장시켜 놓았다.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원제: ‘War of the Worlds.’ 2005년, 116분, 컬러. ★★★★ (5개 만점)

브로큰 플라워

옛 여인을 찾아 나선 중년 남성의 여정

EBS 낮 2시 20분

‘천국보다 낯선’의 짐 자무시는 길 위에 선 사람들에 대한 그리 평범하다고는 할 수 없는 영화들을 다수 만들어왔다. ‘브로큰 플라워’에서도 그 같은 여정은 멈추지 않는다. 주인공인 돈은 동거 중이던 애인이 떠나던 날 분홍색 편지 한 통을 받는다. 발신자 이름이 쓰여 있지 않은 이 편지는 돈에게 그 몰래 낳은, 이제는 열아홉 살이 된 아이가 아버지를 찾아나선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친하게 지내는 이웃 남자의 권유로 돈은 이 편지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과거의 여인들을 찾아나서는 여정에 오른다. 이제 돈은 자기 앞을 지나가는 수많은 단서들을 가지고 미스터리의 해답을 찾아내려 한다. 그러나 이 기이한 로드무비는 해답을 주기보다는 과거와 현재의 진공 상태를 자꾸 확장하고 그럼으로써 이상한 매혹을 부풀려 놓는다. 빌 머레이의 뚱한 표정이 인상적인 이 영화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감독 짐 자무시. 원제: ‘Broken Flowers.’ 2005년, 105분, 컬러. ★★★★ (5개 만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