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 당신의 사랑영화는 무엇입니까

여기, 사랑에 대한 두 가지 시선이 있다.

하나는 시대가 바뀌어도 변치 않을 지고지순의 순애보, 또 하나는 21세기 세속 도시의 쿨(cool)한 사랑이다.

곽경택이 연출하고 주진모가 주연한 ‘사랑’(20일 개봉)과 ‘~ing’의 감독 이언희가 연출하고 이미연·이태란이 주연한 ‘어깨너머의 연인’(10월 18일 개봉).

운명적 사랑과 인스턴트 사랑 혹은 시대착오적 사랑과 현실적 사랑 사이에서, 당신의 선택은.

‘사랑’ 

거친 사내의 뜨거운 심장이 운다
“내가 니를 억수로 사랑하는데… 그라문 됐다  내 그거믄 다 버틸수 있다” 

영화 ‘친구’(2001)에서 그 대사를 기억하는가. 교도소 면회실에서 “왜 그랬는데?(왜 자백했냐?)”를 묻는 상택(서태화)의 질문에 “쪽팔리서”라고 대꾸하던 준석(유오성). 다시 장면 전환. 교도소로 면회 온 미주(박시연)에게 인호(주진모)가 억센 부산 사투리로 묻는다. “내가 니를 억수로 사랑하는데, 니도 그러나?” 끄덕이는 미주. 그리자 인호가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그라믄 됐다. 내 그거믄 다 버틸 수 있다.”

이 장면은 ‘사랑’의 모든 것을 압축한다. 남자들의 우정에 대한 곽경택식 해석이 ‘친구’였다면, 사랑에 대한 곽경택의 주석이 ‘사랑’인 것이다. 전학 간 초등학교에서 첫눈에 반한 소녀와 헤어진 지 10년. 고등학교 유도부원이 된 인호는 미주와 재회한다. 하지만 부잣집 소녀였던 예전의 공주님은 온데간데 없고, 달콤한 연애는 환상일 뿐이다. 사업에 실패한 미주 어머니는 술주정뱅이가 되어버렸고, 악질 양아치 치권(김민준)은 미주 엄마 노름빚을 빌미로 그녀를 납치해 폭행한다. 인호는 치권에게 칼을 꽂은 뒤 교도소로 가고, 미주는 또다시 사라진다. 7년이 흘러 이들은 다시 재회한다. 공교롭게도 이번에는 건설회사 유 회장(주현)의 경호실장과 유 회장의 정부(情婦) 신분으로.

규모와 스피드를 앞세우다 정작 감정과 드라마를 잃었던 전작(‘태풍’)과 달리, ‘사랑’에서 곽경택 감독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한다. 스케일보다는 세세한 감정의 디테일을 담아내기. 이를 바탕으로 한눈팔지 않은 사내의 순정한 사랑을 핏빛 누아르로 담아낸 연출은 작지 않은 정서적 파괴력을 지녔다. 배우들의 연기도 흥미롭다. 투명한 눈빛으로 발언하는 주진모의 일편단심 연기도 꽤 설득력 있고, 비열함의 한 극단을 보여주는 김민준의 연기는 이 배우에게 이런 얼굴이 있었나 싶은 발견의 기쁨을 준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수만 번 변주해온 전형적 사랑이야기지만, 익숙한 요소들로 빚어내는 화음도 제대로만 연주하면 꽤 호소력이 있다는 것을 ‘사랑’은 보여준다.

궁금한 건 여성 관객들의 반응이다. ‘사랑’은 남성의 시선에서 바라본 남성들의 사랑영화다. 심지어 여성관객의 입장에서는 불편해질 마초적·폭력적 장면들도 적지 않다. 이를 시대착오적 신파로 볼 것인가, 아니면 절대적 사랑을 스크린에 재현한 흥미로운 멜로로 볼 것인가.


‘어깨너머의 연인’  

도시 여성의   쿨한 머리가 계산한다  
“연애는 뭐~ 그냥 잠만 자는거야   인생을 새롭게 리셋하겠어” 

진짜 사랑이란 게 있을까. 사랑은 그냥 호르몬의 화학작용이 만들어낸 뇌의 마취상태가 아닐까. 영화 ‘어깨너머의 연인’은 30대에 접어든 여성의 입을 빌어 그녀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사랑’에 현실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랑이란 없다’는 그녀들의 인생에 계산치 못했던 변수들이 생겨나면서 ‘사랑이 뭘까’라고 스스로에게 해답을 구한다. 4년 전 영화 ‘~ing’로 순수한 사랑을 그린 이언희 감독(32)이 딱 자신 나이에 맞는 이야기에 손을 대, 관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현실을 직시해!”

잘 나가는 사진작가인 정완(이미연)은 ‘사랑은 믿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유부남(김준성)과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연애는 뭐~. 그냥 잠만 자는 거야”라고 말해버리는 타입. 알고 보면 상처 받기 두려워 사랑에 다가가지 못하는 여인이다. 그런 인생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섹스나 하려고 만난 유부남에게 덜컹 사랑을 느끼게 된 것. 그에게 ‘쿨하게 살자’고 당당히 외치지만 울먹이는 목소리는 감출 수 없다.

‘결혼 따윈 필요 없다’는 정완과 단짝인 부잣집 사모님 희수(이태란)는 남자보다 옷을 더 좋아하고, 결혼은 ‘안심보험’이라 외친다. 남들이 절대 침 바르지 않을 것 같은, 그래서 더 안심되는 ‘아저씨 스타일’과 결혼을 했건만, 자기보다 10살 어린 여자애와 바람을 핀 걸 알게 된다. 바람 자체는 괜찮지만 “남편이 별로”라는 촌스런 그 여자애의 말에 자존심이 상해 이혼을 선언한다.

“인생을 새롭게 리셋하겠어”라는 희수의 대사는 그녀들의 앞날을 대변하는 말. 자기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결론은 다소 교훈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요즘 여자들의 목소리를 적당히 잘 살린 편이다.

‘여자들의 누드토크’ ‘그거…. 할까? 말까?’라는 야릇한 포스터 문구와는 달리 영화는 그녀들의 육체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언뜻 ‘싱글즈’를 떠올리는 감칠맛 나는 대사는 귀에 쏙 들어오지만 그렇다고 자극적이지도 않다. 유쾌한 버디 무디 같지만 ‘델마와 루이스’처럼 극적이지도 않고, 감각적인 영상과 매끈한 화면이 눈에 들어오지만, 섹시한 트렌디 드라마라고 하기엔 덜 파격적이다. 다행인 점은 그래서 오히려 더 현실적이라는 것.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20~30대의 도시적인 여성을 잘 담았다. ‘맞아 맞아’를 연발하며 보게 된다. 2002년 유이카와 케이에게 나오키상을 안겨준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것으로 얼마 전 일본에선 드라마로 만들어져 나쁘지 않은 반응을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