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행복', 잔인할 만큼 현실적인 사랑의 묘사

영화 '봄날은 간다'(2001년)는 '변치 않는 사랑'이라는 말에 물음표를 달았다. 불같이 뜨거웠던 사랑 후에 남는 공허함을 잔잔한 흐름 속에 담아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유지태의 대사는 뭇 남성들의 눈물 깨나 뺐다.

멜로 한 우물을 파왔던 허진호 감독의 네번째 영화 '행복'(10월 3일 개봉)은 '봄날은 간다'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묘사는 잔인할 만큼 현실적이다.

서울에서 클럽을 운영하며 술, 담배, 여자에 파묻혀 살던 남자 영수(황정민). 사업실패와 실연, 여기에 간경변이라는 병까지 겹친 그는 '희망의 집'이라는 시골 요양원을 찾아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중증 폐농양 환자인 은희(임수정)를 만나 지금까지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사랑을 시작하고, 급기야 동거까지 하게 된다. 영원할 것만 같던 둘의 사랑.

하지만 영수의 병이 완치되면서 둘의 사이는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다. 영수는 다시 예전의 생활들이 그리워진다. 이제는 가슴이 아파 밥을 천천히 먹어야만 은희의 모습도 지겨워지기 시작하고, 지금까지의 행복이 행복이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영화는 사랑의 단 맛이 아닌 쓴 맛을 보여주면서 다시 한 번 묻는다. '과연 이 세상에 영원한 사랑이라는 게 있을까'라고. 　병든 남녀의 사랑 이야기라는 어떻게 보면 진부한 설정. 그마나 스토리는 처음부터 충분히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이같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러닝 타임 내내 머리와 가슴을 묵직하게 울린다.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들의 호연 덕분이다.

허진호 감독은 이번에도 감정을 넘치지 않게 조절하는 특기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딱 답답하지 않을 만큼만 절제하고 강요는 하지 않는다. 작품들 모두 비슷비슷하다는 비판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자신의 장기를 십분 발휘했다.

재작년 이맘때 순수한 농촌 총각 석중 역으로 온 국민의 눈시울을 적셨던 황정민은 이기적인 남자 영수 역을 얄미울 정도로 훌륭히 연기해냈고, 특히 임수정의 열연이 빛난다. 매 작품마다 비약적인 발전을 보였던 임수정은 이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느낌이다.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은희는 상상이 안 될 정도다.

'행복'. 오늘도 변치 않겠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주고 받으며 사랑을 하는 커플들이나, 이미 사랑의 쓰라림을 겪었던 남녀 모두 보고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영화다.

가을에 딱 어울리는 영화 ★★★★ (전상희 기자) 소주 한 잔 생각난다 ★★★ (김천홍 기자) 사랑에 대한 현실적 직시가 돋보인다 ★★★★  (박종권 기자) ※별점(5개 만점)

- Copyrights ⓒ 스포츠조선,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