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 실수… 베를린 필 청중의 ‘유쾌한 굴욕’

‘천하무적’ 베를린 필하모닉이 버티고 있는 독일 베를린은 유럽 교향악의 중심지입니다. 이곳 청중은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잔기침을 콜록거리며 분위기에 훼방을 놓는 일도 없을 것 같습니다. 지극히 높은 감식안으로 콘서트에서 연주 곡목을 미리 꿰차고, 혹시 연주자가 실수라도 하면 근엄한 표정으로 모든 걸 집어낼 것 같습니다. 사실일까요? 꼭 그렇진 않습니다.

베를린 필의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지난 2월 ‘유쾌한 교향악 실험’을 벌였습니다. ‘실험 과제’는 하이든(1732~1809)의 교향곡 90번이고, ‘실험 대상’은 본거지인 베를린 필하모니 홀에 모인 청중입니다.

‘매우 빠르게(allegro assai)’라는 지시가 붙어있는 마지막 4악장에서 래틀과 베를린 필은 날렵하면서도 재빠른 속도로 종착점을 향해 달려갑니다. 3분이 지나고 결승점이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이 악단은 갑자기 연주를 마치고 멈춰 섭니다.

쭈뼛하던 청중은 잠시 뒤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지만, 능청스러운 지휘자 래틀과 베를린 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연주를 이어갑니다. 관객들도 실수를 알아차리고 어색한 듯 웃음을 터뜨립니다.

다시 속주가 시작되고 흥겨운 연주는 끝을 향해 치닫습니다. 5분이 흐르고 다시 모든 연주가 멈추자 청중은 더 큰 박수를 터뜨립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연주가 끝난 건 아닙니다. 또 다른 트릭일 뿐이지요. 청중은 쑥스러운 듯 더 크게 웃음 짓습니다.

래틀과 베를린 필은 두 번에 걸친 청중의 실수와 멋쩍은 미소까지 모두 담은 실황을 최근 음반으로 발표했습니다. 홈 팬들의 실수를 전 세계에 고발하겠다는 뜻일까요.

청중의 박수 없이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4악장을 ‘대안(alternative)’으로 함께 실어 놓았습니다. 요즘 영화 DVD에서 극장판과 또 다른 결말을 함께 싣듯이 말이지요.

베를린 청중이 두 번이나 속아 넘어간 건, 실은 작곡가 하이든이 만들어낸 트릭 때문이기도 합니다. 반복을 통해 끝날 듯 말 듯, 알쏭달쏭한 재미를 작품 말미에 덤으로 선사한 것이지요.

래틀은 음반에 직접 쓴 해설에서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낼 만한 벗으로 하이든보다 더 나은 작곡가가 있을까?”라고 묻습니다. 그의 유머는 20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지요. 래틀은 “청중이 반복 때문에 두 번씩이나 속는 것 또한 엄연히 작품의 일부이며, 만약 하이든이 지금 교향곡을 작곡했다면 실수로 울리는 휴대 전화 소리까지 악기로 썼을지 모른다”고 합니다. 근엄함만이 아니라 유머 감각 역시 클래식 음악의 엄연한 ‘필수 요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