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타이틀 놓고 맞붙은 숙적 이세돌·조한승 가상대담

건곤일척. 이번 승부에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쏟아 부을 태세다. 이세돌(24)과 조한승(25)이 2일부터 제35기 명인전 결승 5번기에 돌입한다. 국내 타이틀로는 사상 최초로 우승 상금 1억 원이 걸린 싸움. 하지만 돈 때문만은 아니다. 둘은 입단(95년 7월) 동기생이라는 우정과, 중요한 고비 때마다 희비를 갈라온 적대감 사이에서 미묘한 공존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번 큰 승부를 앞두고 ‘속’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두 사람. 그러나 피차 왜 할 말이 없겠는가. 기자가 두 숙적의 ‘속’으로 들어가 가상 대담을 엮어봤다.

(이세돌) “형 참 지독하다. 명인전 리그 중간까지 별볼일없기에 이번엔 형 좀 피할 수 있겠다 했는데, 그 뒤로 5연승(동률 재대국 포함)을 보태 기어이 올라왔더군. 우리 고향(전라도) 말로 징하다 징해.”

(조한승) “7월 3일 네가 나를 패대기치는 통에 명인전에서 2승 3패가 됐었지. 거의 포기했었는데 너 보고 싶어 악착같이 올라왔다. 리그 2등인 내가 1등한 너(7승 2패)를 이겨 우승하면 팬들도 더 짜릿해하겠지? 흐흐.”

(이) “그 명인전 대국 바로 다음 날 농심배 예선에서 형이 나를 떨어뜨린 건 잊어버렸남? 나는 그 바람에 신나게 쌓아가던 연승 행진이 24에서 스톱했잖아. 그 바둑을 져서 나는 농심배에서 9년째 연속 구경꾼이 됐다고. 자기는 올해도 한국 대표로 나가고…. 나하고 무슨 원수진 일 있어?”

(조)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출발은 나랑 똑같이 했는데 너는 벌써 22회나 우승했다며? 현재 보유 중인 타이틀만 해도 6개나 되잖아. 나는 신인 대회 우승 두 번 빼면 지금 갖고 있는 천원이 유일한 타이틀이다. 준우승만 여섯 번이나 하고….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이) “맞다. 작년 천원전 때 형이 결승에서 나를 3대1로 보내고 우승했지. 우리 둘이 펼친 유일한 번기(番棋) 승부였어. 그러고 보면 나는 형과 맞닥뜨리면 언제나 형 좋은 일만 시켜줬던 것 같아. 2000년도던가… 내가 32연승을 달릴 때 발목 잡았던 사람도 형이었지?”

(조) “지금까지 우리가 총 25번 만나서 네가 14번, 내가 11번 이겼더라. 도대체 누가 누구 발목을 잡은 거냐? 어찌됐건 이번 명인은 내 거니까 괜히 흑심 품지 마라. 올해 천원전에선 벌써 떨어져서 나는 이미 빈털터리나 마찬가지 신세다. 너는 다른 먹잇감도 많잖아.”

(이) “국수전 천원전 바둑왕전 등에 올라가 있지만 타이틀 따려면 아직도 멀었어. 그보다도 올해 연도별 승률왕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싶었는데, 9월 중순 이후 두 판이나 지는 바람에 다 글렀어. 우선은 이번 명인전 우승에 총력을 쏟을 수밖에 없다구.”

(조) “나는 군 입대 문제다 뭐다 해서 골치가 아프다. 네가 중요한 고비 때 한 번 만이라도 양보해 줬으면 훨씬 잘 풀렸을 텐데…. 세돌이 너는 장가 일찍 들어서 사랑하는 처자식도 있고, 타이틀 많아 돈도 많이 벌잖아. 양보해 줄 거지?”

(이) “처자식 때문에 더 많은 수입이 필요한 거 몰라? 애 우유 값이 얼마나 비싼데…. 어릴 때부터 같은 도장에서 성장한 바람에 나이도 석 달 차밖에 안 나는데 깍듯이 형으로 모시는 보답을 하라고. 후후. 다 농담이고 함께 좋은 내용의 바둑 두도록 해.”

(조) “나도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입단 동기생이자 도장 동문인 네가 펄펄 날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러나 다시 무관(無冠)으로 전락하는 것은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기왕 ‘이세돌 킬러’란 소리를 들어온 마당이니 이번에 확실히 내 솜씨를 보여줄 생각이다. 각오 단단히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