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 정중동

〈제6보〉(59~73)=한상훈의 이번 대어 포획은 혹시 구리의 ‘부친상 쇼크’ 덕분은 아니었을까. 기사는 기보(棋譜)와 성적표로만 말한다. 한상훈은 석 달 후 벌어진 삼성화재배 때 다시 8강에 오르는 것으로 세간의 의혹(?)에 답변했다. 두 번째 8강행의 디딤돌은 거함 이창호였다. 잇단 ‘기적’이 한 ·중 양국 최정상을 대상으로 실현됐다는 사실이 극적 요소를 더 한다. 이 ‘19세 반란’의 끝은 과연 어디쯤일까.

59부터 62까지는 의당 이렇게 될 곳. 63, 65는 흑 대마를 보강하려는 뜻이다. 66은 ‘끊으면 뻗어라’는 기훈대로다. 70은 13분을 투입한 이 바둑 최장고수. 약점을 방지한다고 ‘가’로 잇는 것은 흑에게 ‘나’를 당해 애써 쌓은 우세를 한순간에 날려보내게 된다. 72까지, 백은 우변에 터를 잡으면서 차분히 우세를 다져나가고 있다.

73으로 곧장 ‘가’에 끊는 것은 좀 성급하다. 참고도 5까지가 거의 필연인데, 이것은 성공을 보장하기 힘든 난전으로 번질 것이다. 73은 협공의 형태로 하변 백세를 견제하면서 ‘가’의 약점도 노리겠다는 의미. 말하자면 다목적 착점이다. 한 수, 한 수에 칼을 품은 채 바둑은 중반의 심연(深淵)으로 빠져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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