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얀, 내 인생의 지휘자”

19세의 소년은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고 있던 지휘자 카라얀의 조수가 됐다. 당시 소년과 카라얀은 정확히 51세의 나이 차(差)가 났다. 어릴 적부터 작은 극장에서 반주자로 경험을 쌓았던 소년에게 카라얀은 경이로움 자체였다.

“당시 카라얀은 70세였어요. 노장이 전혀 긴장하지 않고 작은 동작만으로 최고의 소리를 빚어내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죠. 지휘자로서 그는 너무나 쉽게 자신이 원하는 걸 얻어냈어요.”

30년 가까이 흘렀다. 소년은 ‘바그너 음악의 성지’인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의 중심에 서는 명지휘자가 됐다. 뮌헨 필하모닉의 음악 감독인 지휘자 크리스티안 틸레만(Thielemann·48)이다. 다음달 뮌헨 필을 이끌고 첫 내한 공연을 갖는 틸레만은 전화 인터뷰에서 “지휘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험이라는 걸 카라얀에게 배웠다. 내가 지휘자로서 경력을 쌓기 위해 첫발을 내디뎠을 때, ‘언제든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오라’고 했던 그의 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바그너의 뜻에 따라 오로지 바그너의 오페라와 악극(樂劇)만을 공연하는 ‘바그너의 성지’가 독일 바이로이트다. 틸레만은 마흔을 갓 넘긴 지난 2000년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를 지휘하며 바이로이트와 인연을 맺었다. 2001년 ‘파르지팔’과 2002년 ‘탄호이저’에 이어 지난해부터 바그너의 4부작 ‘니벨룽의 반지’를 5년간 지휘하는 음악 감독이 됐다. 푸르트벵글러, 카라얀, 칼 뵘, 피에르 불레즈, 게오르그 솔티, 다니엘 바렌보임, 제임스 레바인 같은 명지휘자들이 바통을 이어받은 ‘반지’의 음악 감독은 사실상 ‘당대 최고의 바그너 전문가’와 같은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틸레만은 “바이로이트에서 영웅은 단 한 사람뿐이며, 그 사람(바그너)은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다”며 웃었다.

“한여름에 냉방 장치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극장에서 무더위와 싸우면서 성악가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5~6시간 가까이 연주에만 몰두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바그너의 음악이 지닌 힘 때문이죠.”

그는 “여름 시즌에 이곳에 모여든 음악인들은 바그너 음악을 연주하면서 일종의 ‘가족’ 같은 느낌을 공유한다”며 “실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은 다른 유럽의 극장보다 연주료도 훨씬 적다”며 또 웃음을 터뜨렸다.

2004년 음악 감독으로 취임한 뮌헨 필하모닉은 명지휘자 첼리비다케(1912~1996)가 20년 가까이 이끌었던 교향악단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틸레만은 “베토벤과 브루크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같은 독일 레퍼토리에서 첼리비다케가 남긴 영향은 너무나 컸다. 지금까지도 오케스트라의 연주에서 그의 체취를 느낄 때가 있으며, 가끔씩은 나 스스로 활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틸레만은 베토벤·브람스·바그너·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의 독일 관현악을 즐겨 연주하기 때문에 흔히 ‘독일 교향악의 계승자’로 불린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돈 후안’과 ‘죽음과 변용’, 브람스 교향곡 1번을 들려준다.

하지만 그는 “누구에게나 딱지를 붙이기는 쉽지만 정작 나 자신은 러시아와 프랑스 음악도 즐겨 연주한다”며 “음악인들은 언제나 ‘하나의 음악만을 잘 한다’는 선입견에 빠지고 있지 않은지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뮌헨 필하모닉 내한공연, 11월11일 오후 5시 성남아트센터, (031)783-8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