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스며드는 ‘겨울 나그네’의 회한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세 번째 음반 ‘겨울 여행’을 냈다. 클래식 음악을 대표하는 색인 노란 빛깔의 음반사 도이치그라모폰(DG) 레이블을 달았다. 두 장의 CD에 담긴 수록곡은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와 ‘겨울 나그네’다. 피아노 대신에 기타(박종호)와 기타 두오(이성우·올리버 파르타흐 나이니)가 각각 반주를 맡았다.

비올라로 연주한 기존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음반 가운데 유리 바쉬메트(RCA)와 노부코 이마이(샨도스)의 연주와 비교하면 용재 오닐의 연주는 무엇보다 ‘따스함’으로 다가온다. 용재 오닐의 1699년산 조반니 토노니 비올라의 음색은 풍윤하다.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빈의 악기 제작자 슈타우퍼가 1823년 고안한 악기인 아르페지오네를 위한 작품이다.

여섯 줄 기타와 비슷한 외형에 첼로와 유사한 연주법으로 ‘기타 첼로’라고 불렸던 아르페지오네는 약한 음량과 그다지 뚜렷하지 못한 인상 때문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 뒤 첼로로 많이 연주됐지만 첼리스트들에게는 표현이 녹록지 않은 난곡으로 꼽혀 왔다.

비올라와 기타의 이중주로 연주된 이번 음반은 첼로와 피아노의 훌륭한 대안이다. 높은 음역의 비올라와 아르페지오네를 닮은 기타 연주는 멸종된 악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원제 ‘겨울 여행’)를 비올라와 기타 듀오의 버전으로 전곡 녹음한 것은 리처드 용재 오닐이 처음이다. 비올리스트 출신의 작·편곡가 루트카 폴머가 이번 음반을 위해 편곡한 악보를 사용했다.

바리톤 피셔 디스카우 같은 성악가들의 노래로 익숙한 곡을 비올라로 듣고 있자니 ‘겨울 나그네’는 ‘무언가(無言歌)’로도 뛰어난 곡 같다. 기타 듀오 반주는 보헤미안 같은 여행자의 내면을 두드러지게 한다.

첫곡인 ‘안녕히’부터 비올라의 회한이 남다르다. ‘동결’에서는 엄정함이 느껴지고, 유명한 ‘보리수’에서는 비올라의 따스한 서정과 기타의 서늘한 찬바람이 교차한다. ‘홍수’는 차분하고 여유로운 미소 속에 흐르는 눈물을 연상시키고 ‘휴식’은 우울함과 고즈넉함이 지배적이다.

창밖으로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비올라가 노래하는 ‘무언가’를 듣고 있으니 문득 슈베르트가 말을 걸어온다. 함께 겨울 여행을 떠나지 않겠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