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 목을 내밀다

〈제13보〉(177~202)=끝이 보이지 않는 흑의 고전. 자존심 강한 기사들은 이렇게 되기 전에 돌을 거둔다. 억지로 버티다가 패하면 두 번 지는 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싹싹한 성격의 구리가 지금 보여주고 있는 ‘몸부림’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상대가 한국의 무명 초단이란 점을 의식했음이 분명하다. 변명하기 힘든 흐름에 그는 차마 돌을 못 거둔 채 불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177로 참고도 5까지 두 눈을 내면 백은 7로 살지 않고 6으로 역습한다. 8이 우변 흑 대마를 위협하며 눈 모양을 보는 급소. 결국 178, 180이 백의 손에 돌아가 거대한 좌중앙 흑 대마가 패에 걸렸다. 182로는 186에 두어 즉결처분(?)할 수도 있으나 일단 “내 돌만 살려주면 용서하겠다”는 메시지.

흑이 좌변을 살릴 차례인데 외면하고 185(12집 크기)로 딴 청을 부린다. 하긴 맞아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매 한가지. 이제는 백도 상대 목을 치러 나설 수밖에 없다. 186부터 돌 수만 40개에 가까운 흑 대마의 삶이 걸린 마지막 패싸움이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187 193 199…△, 190 196 202…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