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이야기하는 ‘보이는 소리’

    입력 : 2007.10.19 00:20 | 수정 : 2007.10.19 02:25

    국립서울농학교 학생들 31일까지 설치미술전 열어

    ‘보이는 소리’전시회를 찾은 한 학생이 설치작품의 프로젝터를 이용해 손가락으로‘본다’라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 /이태경 객원기자 ecaro@chosun.com
    거의 모든 학생들이 ‘입’ 대신 ‘손’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학교. 서울 종로구 신교동 ‘국립서울농학교(교장 이유훈)’다.

    이 학교 교실이 지난 11일부터 미술관으로 변신했다. 오는 31일까지 열리는 설치미술전시회인 ‘보이는 소리’다. 거의 모든 전시 작품은 12명의 예술가들과 학생들이 머리를 맞대고 부대끼면서 이뤄낸 열매들이다. 50평짜리 교실에 합판을 이용해 칸막이를 세우고, 햇빛을 막기 위해 창문에 은박지를 덧댄 허술한 전시실이지만, 작가들과 학생들이 만들어낸 그림·사진·소리·화면은 관람객 눈을 사로잡는다.
    서로 대화하기가 쉽지 않았던 이시우 작가는 고등학교 2학년 원서연양, 송정현군과 인터넷 대화방에서 신나게 수다를 떨었고, 함께 ‘리니지2’ 게임도 했다. 게임 속에서 은빛 머리칼의 남녀전사로 변신한 두 학생의 이야기는 작가의 멋진 그림 ‘the journey for a week’가 됐다.

    액정 TV 화면에 걸려 반복 상영되고 있는 단편영화 ‘beyond silence’는 2학년 김성경군이 시나리오를 쓰고 유비호 작가가 화면으로 재구성했다. 비(非)장애인 학교에 다니면서 힘겨워하던 청각장애 고교생이 어머니와 한바탕 다툰 뒤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다는 줄거리에는 자신의 경험이 녹아있다. 다른 학생보다 조금은 말을 할 줄 아는 김군은 느리지만 또박또박 ‘작품의 의도’를 설명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수화(手話) 나누는 것을 보면 다들 비웃어요. 어떨 때는 가운뎃손가락을 들며 욕설도 하고…. 겉은 멀쩡하고 말도 다 통하는 사람들이에요. 앞으로는 더 당당하게 살아갈 겁니다.” 영화의 마지막 자막. ‘문자가 26통이나 왔다. 전부 엄마였다.’

    작가들은 지난 여름 이 학교를 찾아와 일부러 수화를 배우며 학생들과 친해졌다.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상처받기 쉬운 아이들에게 미술 작품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게 해주고 싶었다’는 것이 이번 전시회의 기획 의도다.

    이 학교에는 조선일보의 ‘스쿨 업그레이드, 학교를 풍요롭게’ 캠페인의 일환으로 지난 7월 최신식 모니터가 장착된 PC 30대가 기증됐다. 전시회는 31일까지 국립서울농학교 청각언어훈련센터 2층 교실에서 열린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토·일요일은 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