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하게… 여유롭게… 따스하게…

바흐와 베토벤의 기악곡에는 종종 구약과 신약 성서라는 비유가 붙는다. 이를테면 피아니스트를 비롯한 건반 연주자들에게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이 구약 성서라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32곡)은 신약 성서다. 마찬가지로 첼리스트에게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구약이라면,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전곡(5곡)은 신약이다. 두 작곡가가 연주자들에게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짐작할 수 있는 대구(對句)이기도 하다.

첼리스트 양성원(연세대 교수)이 ‘구약’에 이어 ‘신약 성서’에 곧바로 도전했다. 지난 2005년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음반을 내놓은데 이어, 올가을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전곡(EMI)을 녹음했다.

이전 바흐 음반에서 바닷가의 바위를 촬영한 사진 작가 배병우의 작품을 담았는데 이번 베토벤 음반에서도 같은 작가의 숲 속 소나무 사진으로 앨범 표지까지 대구를 맞췄다. 바흐가 끝없는 풍화 작용에도 변함 없이 굳고 단단하다면, 베토벤은 끝없이 상승하고자 한다는 의미일까. 양성원의 음악 지기(知己)인 파스칼 드봐이용(Devoyon)이 피아노를 맡았다.

바흐에 이어 베토벤까지 거침없는 ‘첼로 등정’이지만, 첫 곡으로 실린 첼로 소나타 1번부터 쉽게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이지적으로 접근해간다. 1악장 아다지오 소스테누토에서 알레그로로 속력을 점차 높이는 대목에서도 첼로는 차분하고 넉넉하다.

1·2번 소나타는 별도의 느린 악장 없이 두 악장씩으로 구성돼 있는 대신, 첫 악장이 모두 느린 도입부로 시작한다. 이 도입부에서 양성원의 첼로와 드봐이용의 피아노는 결코 서두르지 않고 충분히 여유를 즐긴다.

두 연주자가 그려내는 베토벤은 한순간 뜨겁게 폭발하는 열기보다는 따뜻함을 내내 간직하고 있는 온기에 가깝다. 소나타 3번 1악장의 4분 즈음에서 악보를 넘기는 듯한 소리는 오히려 인간적으로 들린다. 두 연주자가 서로를 응시하며 다른 악기를 통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듯한 재미는 헨델과 모차르트 주제에 의한 변주곡들에서 두드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