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작품 등 2800여점 왜 가짜인가 했더니…

한국고서연구회 고문 김용수씨가 소장한 이중섭·박수근 화백의 작품 2800여점이 위작(僞作)인지 여부를 수사 중인 검찰이 24일 ‘가짜’라고 결론지은 경위를 밝혔다.

2005년 2월 3억1000만원에 팔린 가짜 이중섭 화백 작품 ‘물고기와 아이’는 김씨가 잘못된 원본 사진을 베끼는 바람에 들통이 난 것이라고 서울중앙지검은 말했다. 1977년 발간된 ‘한국현대작가 100인 선집’에 나온 이 화백 그림이 1997년 서귀포 미술관 개관 기념 화집에는 제작자 실수로 좌우가 바뀌어 인쇄됐는데, 김씨가 이 잘못 찍힌 그림을 본떠 가짜 ‘물고기와 아이’를 그렸다는 것이다.

 

김씨는 이 그림을 이 화백의 아들 태성(일본 거주)씨에게 건넨 뒤 ‘유품(遺品)’으로 둔갑시켜 미술품 경매회사를 통해 팔았다. 태성씨는 “오랫동안 보관해오던 아버지 작품”이라며 작품을 경매에 내놓았으나, 검찰 수사 과정에서 김씨로부터 경매 직전 건네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태성씨는 김씨에게 “아버지 묘지 이장비용이 필요하다. 그림을 주면 팔아 비용을 대겠다”고 제의, 가짜그림을 넘겨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학생이 그린 그림에 덧칠을 한 경우도 있었다. 박수근 화백의 가짜 서명이 적혀 있는 ‘한복 입은 여인’ 등 19점은 1956년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이모씨가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인데, 김씨는 여기에 덧칠을 해 박 화백의 화풍처럼 보이게 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이 작품에는 ‘태안중학교 제이학년 이○○’이란 글자가 남아 있었다. 검찰은 그러나 이들 작품 이외에 나머지 작품을 누가 그렸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검찰은 또 김씨가 소장하고 있던 작품에 쓰인 물감이 두 화백의 사후(死後)에 쓰인 것이란 사실을 밝혀내고, 위작으로 결론 내렸다. 김씨가 지니고 있던 일부 작품에는 금속성 광택을 내는 산화티타늄 성분의 ‘펄(pearl) 물감’이 쓰였는데, 이는 두 화백이 사망한 이후에 쓰인 물감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엑스선분석기로 촬영해 이 물감 성분이 쓰인 것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23일 김씨에 대해 사기 등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김씨는 여전히 진품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김씨는 “소장하고 있던 작품들은 1971~72년 서울 인사동에서 사들인 것으로, 당시 집 한 채 값 정도의 돈이 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김씨의 변호인은 전했다. 이 사건은 2005년 태성씨가 김씨에게서 건네받은 그림을 “아버지 작품”이라며 경매에 부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위작 의혹이 일자, 김씨가 두 화백 그림이라며 미공개 작품을 내놓으면서 진위공방이 벌어져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검찰은 국적이 일본인인 태성씨에 대해선 사기의 공모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기소중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