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위의 삶, 벼랑 끝의 삶 '경계'

장률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영화 ‘경계’의 무대가 되는 곳은 몽골과 중국의 변경 사막지대이다. 이곳을 지키는 남자 항가이는 아내와 딸이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로 떠났지만 고집스럽게 초원을 지키며 나무를 심는다. 그는 혼자의 힘으로라도 초원이 사막화 되는 것을 막고자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최순희(서정)와 그녀의 아들 창호가 찾아온다. 북한에서 탈출한 모자는 항가이와 거주하면서 몽골의 풍습을 익히고, 묘목 심기를 도와준다. 서로의 언어와 풍습이 다르지만 점점 더 신뢰와 애정을 보내게 된다. 관객들이 보는 것은 낯선 사람들이 우연히 만나, 갈등하고, 기다리고, 이별하는 과정이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하지만 두 시간 내내 느릿한 카메라의 움직임을 통해 담기는 몽골의 풍경이 눈을 사로잡는다. 넓은 지평선을 지닌 몽골의 변방은 장률 감독의 카메라를 넓고 느릿하게 움직이도록 만든다. 장률 감독은 전작과 달리 이러한 카메라의 변화가 일어난 연유를 몽골에서 촬영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카메라는 몽골의 삶과 리듬을 쫓아간 것이다.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장률 감독의 전작 ‘망종’은 김치를 파는 조선족 여인 순희가 중국 사내들에게 유린당하고 복수를 감행하는 결말을 다루었다. 장률 감독의 말대로라면, ‘망종’은 중국의 변방 지대에서 일어나는 사건이자 삶의 리듬이다. 삼륜차를 이끌고 김치를 파는 순희의 모습은 희망 없는 삶에 대한 거대한 은유가 된다. ‘경계’에는 접경지대를 수비하는 탱크들이 고요한 사막 위에 굉음을 내며 느닷없이 등장한다. 텅 빈 지평선 위에 덩그렇게 탱크가 지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장률 감독 특유의 유머가 느껴진다. 삶의 궁핍함과 공허함을 이끌어 내는 그의 풍경들은 깊은 성찰과 사유의 결과들이다. ‘경계’를 반드시 커다란 스크린에서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리랑’을 통해 서로의 정체를 깨닫게 되는 몽골인과 탈북자 사이의 충돌과 교감은 넓게 펼쳐진 몽골의 지평선 속에서 녹아내린다. 장률 감독은 전작 ‘망종’에 이어 최순희와 창호라는 모자를 등장시켜, 벼랑 끝에 선 모자의 삶을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 이번 영화에서는 다소의 희망을 챙겨두면서 말이다.

‘경계’의 원제는 ‘히야쯔가르’다. 이 말은 수로나 경계를 뜻하는 몽골어이다. 한때 연변대학의 교수였지만 천안문 사태 이후 소설가로 살다가 늦은 나이에 감독으로 변신한 조선족 출신 장률 감독 삶은 경계에 선 자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현재 그는 신작 ‘이리’를 촬영하고 있다. 벼랑 끝에서도 그의 삶과 영화는 계속 진행형이다. 11월 8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