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하기 전, 그의 손은 왜 발갛게 달아올랐나

‘바로크 시간 여행’의 전제 조건은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27일 세종체임버홀. 프랑스 출신의 명 하프시코드 연주자인 피에르 앙타이는 공연 시작 전에 엄격한 요구 사항을 주최 측에 전달했다. 녹음 전까지 장갑을 끼고 손을 덥혔던 ‘괴짜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처럼, 연주 직전에 손을 덥힐 수 있도록 따뜻한 물을 청했다. 무대로 걸어나올 때 앙타이의 손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연주 중에 혹시 눈이 마주칠 수 있는 객석 2층 우측 상단의 여섯 자리는 비워달라고 요청했다. 이 때문에 지난 18일부터 ‘서울 국제 바흐 페스티벌’을 열고 있는 한양대 음악연구소측은 이 자리를 예약한 관객들의 자리를 급히 바꿔줘야 했다.

앙타이의 연주회에는 객석의 조명이 없었다. 1994년 내한 리사이틀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스비야토슬라브 리흐테르처럼, 무대 위에만 앙타이의 건반과 악보를 비추는 약간의 불빛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객석 안내원은 공연 전에 휴대 전화는 진동이 아니라 반드시 꺼달라고 두 차례나 요청했다. 약간의 울림만으로도 큰 파장을 남기는 옛 음악 연주의 특성을 감안한 주문이었다. 어둠 속에서 아무런 벨 소리의 방해 없이 오로지 ‘시간 여행’에만 집중하는 멋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피아노가 아니라 피아노의 전신(前身)인 하프시코드로 들려주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해맑고 소박했다. 앙타이는 이 곡에 애착을 가져 두 차례 음반으로 완성했다. 연주자의 화려한 개인기나 개성에 집중하는 비르투오소(virtuoso)가 아니라, 지금까지 축척한 자료와 문헌을 바탕으로 바흐 당시의 참모습을 복원하고자 하는 ‘당대 연주’의 묘미가 살아났다.

아리아(aria)에서 출발해서 서른 개의 변주를 거친 끝에 다시 아리아로 돌아오는 곡의 구조는 우리의 삶과도 무척이나 닮아있다. 앙타이는 악보를 넘겨주는 페이지 터너(page turner) 없이, 2시간 내내 직접 손으로 악보를 넘겨가며 우리 시대 바흐의 의미를 진지하게 되물었다. 바흐 페스티벌을 맞아 내한한 바흐 연구의 석학(碩學) 크리스토프 볼프, 소프라노 엠마 커크비, 최근 그라모폰 상을 수상한 오르간 연주자 겸 지휘자인 존 버트 등 옛 음악의 거장들이 객석 11열에 나란히 앉아서 앙타이의 연주를 지켜보는 진풍경도 펼쳐졌다.

2005년에 이어 올해 2회를 맞이한 ‘서울 국제 바흐 페스티벌’은 옛 음악 연주의 세계적 흐름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하지만 해외 단체 위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기 때문에, 국내 고음악 단체와의 연계라는 숙제도 함께 남겼다. 31일까지 (02)2220-1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