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달리아', 영상 '고품격'...스토리는 '산만'

주방에 좋은 식재료가 널려있다면? 아무래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기가 쉬울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재료 하나하나의 맛을 제대로 못 살린 정체 불명의 음식이 탄생할 수도 있다.

'고품격 범죄 수사극'이라는 영화 '블랙달리아'는 아무래도 후자가 된 듯 하다. 발생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미제로 남은 희대의 살인 사건. 여기에 조시 하트넷, 애런 애크하트, 스칼렛 요한슨, 힐러리 스웽크 등 '빵빵한' 출연진과 '거장'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연출까지. 유명 주방장에 고급 식재료를 다 갖춘 셈이다.

그러나 '블랙달리아'는 기대만큼 깊은 실망감을 안겨줬다.

스물두 살의 배우 지망생 엘리자베스 '베티' 쇼트는 1947년 1월 15일, 몸이 절반으로 토막나고 내장이 모두 적출된 채로 LA 다운타운의 레이머트 공원에서 발견된다. 이 사건의 담당은 복서 출신인 두 형사 리 블랜처드(애런 애크하트)와 드와이트 '버키' 블레커트(조시 하트넷). 늘 물과 불로 불리며 최고의 콤비를 이루던 두 사람이지만, 이상하게 수사에 집중할수록 관계가 점점 나빠진다. 그러던 중 버키는 자신의 여자친구 매들린 린스콧(힐러리 스웽크)이 죽은 베키와 관계가 있었음을 알게 되고, 경찰서 내의 부패와 의혹을 조사하기에 이른다.

일단 '블랙달리아'의 영상은 '고품격'이라는 카피에 걸맞은 수준으로 구현됐다. 옐로우 톤을 띠는 화면은 가끔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기도 하지만, 1940년대의 빛바랜 우울함을 담아내는 데는 적합했다.

문제는 스토리. '블랙달리아'는 실제 미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허구의 인물들에 관한 에피소드들을 더해 만들어졌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등장인물만큼이나 할 말도 많았고, 그 결과 '범죄 수사극' 특유의 긴장감을 잃고 방만하게 허둥댔다.

개봉 당시 미국 현지의 반응도 대체로 비슷했다. '모든 것을 스크린을 향해 던지지만, 어떤 것 하나도 제대로 명중시키지 못한다', '현란한 촬영과 세트 디자인으로 이루어낸 성과들은 이야기의 일관성 부재로 인해 빛을 잃는다'….

아쉽게도 '블랙달리아'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했지만 허무함만 남긴 영화가 되고 말았다. 11월 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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