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렬한 베드신 찍다 내가 눈물이…"

결근한 양호교사를 대신해 성교육 수업을 책임져야 했던 여고 교장선생님의 태도가 이랬을까. 두 뺨에 홍조가 지워지지 않을 만큼 민망해하면서도 그는 한없이 진지했다.

수줍은 성격으로 이름난 대만 출신의 미국 감독 이안(李安·53·사진)이 ‘와호장룡’(2000) 이후 7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11번째 작품 ‘색, 계’(色, 戒·11월 8일 개봉)의 홍보 방한. 그의 이번 영화는 한달 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받을 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일반대중에게는 홍콩 스타 양조위(梁朝偉)와 신인 여배우 탕유(湯唯)의 헤어 누드와 격렬한 정사 장면으로 더 화제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29일 오전에 있었던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 영화에서 섹스는 증오와 사랑과 분노의 표출”이라며 당당했지만 오후에 가진 인터뷰에서는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베드신을 찍다가)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데뷔작 ‘쿵푸선생’(1992)을 비롯해 ‘음식남녀’(1994) ‘센스, 센서빌리티’(1995), ‘헐크’(2003), ‘브로크백 마운틴’(2005) 등 ‘감정의 에로티시즘’에 집중했던 전작과 달리 이번 영화 ‘색, 계’는 본격적으로 ‘육체의 에로티시즘’을 다룬다.

양조위에 대해 판타지가 있었던 여성 관객이라면 그 환상이 완전히 충족되거나 오히려 송두리째 파괴될 만큼 적나라한 노출이 이 영화에 있다. 실제로 완성된 영화를 본 양조위가 불만을 쏟아냈다는 홍콩발(發) 타블로이드 뉴스가 잇따랐지만 그는 이런 소문을 전면 부정했다. 오히려 “(헛소문을 믿지 말라고 양조위가) 나를 위로해 줬다”는 것이다.

이안 감독은 “극도로 억눌린 감정은 마지막에 육체로 표출된다고 믿는다”면서 “괴물로 변신해야 했던 ‘헐크’의 무의식이나 증오하면서도 섹스할 수밖에 없었던 ‘색, 계’ 주인공의 내면은 사실상 같은 것”이라고 나직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