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어리 풀어 환희의 몸짓으로

분단 한반도의 미술작가, 이반(67)은 1987년부터 비무장지대 예술문화활동(FRONT DMZ)을 전개하면서 필연적으로 자연생태와 더불어 인간의 몸에 관한 조형적 세계를 추구했다. 그가 오랜 침묵을 깨고 21년만의 개인전(11월 20일까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02-760-4598)을 열고 있다.

작가 이반에게 있어 예술은 자신과 작품을 둘러싼 내·외적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는 길이다. 한국전쟁 때 월북한 부친으로 인해 경험한 작가의 어릴 적 우울한 삶은 농촌의 척박한 황토와 함께 그의 예술에 있어 중요한 모티프가 되어 왔다.

6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선보인 ‘팽창력-거대한 뿌리’, ‘팽창률-뚫음’, ‘빛’과 같은 작업들은 화면 위에 ‘팽창, 수축, 확장, 뚫음, 구김, 찢음’ 등과 같은 신체적 행위를 가한 것으로, 당시 이반의 의식 속에 치열하게 팽창하고 있던 이 땅의 뿌리의식을 캔버스에 적극적으로 옮긴 작업들이다. 분단 이데올로기 속에서 상처 받은 인간 정신과 작가 정신은 화가 이반으로 하여금 ‘고운 붓’과 ‘정해진 물감’ 만으로는 위로 받지 못하고 치유될 수 없는 고통을 거쳐 그만의 거친 회화를 제작하게 했다.

이반은 자신의 작업이 역동적으로 그 시대에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80년대 후반, 비무장지대 문화운동을 통해 이반은 자신의 예술세계가 분단의 아픔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것이 되어야 함은 물론, 이 땅의 역사, 사회 속으로 진입하여 동시대 사람들과 진정으로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80년대 초반 스페인에서 벽화를 연구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세계적 작가 안토니 타피에스를 통해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알게 되고 프랑코 장기 독재에 저항했던 예술인들을 만나게 되면서 이들의 사상과 예술가로서의 역할, 그리고 벽화 제작 등과 관련한 깊은 영향을 받았다.

화가 이반은 이때부터 이 시대에 합당한 벽화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처음으로 DMZ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열정적으로 그곳으로 빨려 들어갔으며 지금껏 이 운동으로부터 결코 탈출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반은 최근 작업, ‘생태의 메아리~몸-태양을 나르는 여인’에서 맨몸덩어리, 벌거숭이 인간들의 몸부림을 쏟아냈다. 화면 속 실오라기 하나하나에까지 배인 혼령들이 모두 꿈틀대고 있다. 이반이 그토록 보여주고자 했던 인간 생명 정신이 물씬 스며들고 다시 배어 나오고 있다. 화력 40년, 화가 이반의 작업을 관류하는 본질적인 특성은 이데올로기이다.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려는 조형의지는 그로 하여금 생태의 뜨거운 호흡을 사랑하는 오늘의 자유를 만들어냈다.

지난 세월, 화가 이반이 자신의 내·외적 이데올로기를 치열하게 뚫고 구기는 과정에서 흩어진 응어리들은 이제 다시 환희의 몸짓으로 화하여 그에게로 돌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