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젊은 ‘보석’, 모차르트를 빛내다

지휘자 르네 야콥스(Jacobs)가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를 새로 내놓았다. ‘코지 판 투테’와 ‘피가로의 결혼’에 이어 모차르트가 로렌초 다 폰테의 대본에 곡을 붙인 ‘다 폰테 삼부작’의 음반이 모두 완성된 셈이다. 야콥스는 당대 연주의 스타일이 완전히 뿌리 내린 전성기에 이 곡들을 녹음했다. 탄탄한 연주력과 축적된 아이디어는 그의 전작들에 전에 없는 완성도를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새 음반은 여러 가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20세기 중반에 레코드 산업이 첫 번째 절정을 구가하면서 나왔던 뛰어난 모차르트 해석들은 그 자체로 벌써 신화가 되었다. ‘돈 조반니’만 해도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음반(EMI)의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소프라노)나 지휘자 요제프 크립스 음반(Decca)의 체사레 시에피를 능가하는 가수는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20세기 말의 음반 르네상스를 장식한 것은 ‘당대 연주’였다. 기름기 없이 선명한 화폭을 장식한 지휘자 아르놀트 외스트만(Decca)과 존 엘리엇 가디너의 음반(Archiv)은 전작과는 확연히 다른 스타일을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의 성과 위에서 야콥스가 보여줄 수 있는 카드는 상대적으로 다양하지 않았다.

앞선 ‘피가로의 결혼’과 ‘코지 판 투테’에서는 당대 해석의 기반에서 이력을 시작한 젊은 성악가들의 노래로 듣는 이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투명한 질감의 관현악 앙상블과 관습을 따르지 않는 아름다운 앞꾸밈음은 작품을 전혀 새로운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번 ‘돈 조반니’에는 그런 매력이 상대적으로 빛을 잃었다.

야콥스는 이번에도 새로운 장치를 많이 만들었다. 그는 레치타티보의 반주에 하프시코드가 아닌 포르테피아노를 사용했다. 또 일반적인 빈 공연판이 아닌 프라하 초연판을 기본으로 하면서 빈에서 추가된 아리아들을 말미에 부록으로 추가했다.

이런 시도가 무색하게, 한층 젊어진 성악 배역은 노련함이 부족하거나(돈 조반니를 부른 요하네스 바이서), 아니면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돈나 안나의 올가 파시치니크). 익살맞은 레포렐로 역의 로렌초 레가초가 시종일관 제 몫을 할 뿐이다.

국내에서 이 음반이 화제를 모으는 것은 체를리나 역에 한국의 소프라노 임선혜가 참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난봉꾼 돈 조반니의 새로운 ‘사냥감’으로 결혼을 앞둔 시골 처녀 역을 맡은 임선혜는 이 음반의 보석과도 같다.

특히 야콥스가 고른 프라하 판본에는 체를리나의 존재감을 좀 더 부각하는 레포렐로와의 멋진 이중창 ‘그대의 작은 손’이 들어 있다. 외스트만의 음반에서 바버라 보니가 불렀던 이 노래를 임선혜는 한층 교태를 부리며 감질나게 노래한다.

1막에서 돈 조반니와 부르는 이중창 ‘손에 손을 잡고’와 ‘때려줘요, 마세토’, 2막의 ‘약방의 노래’와 앞서 말한 ‘그대의 작은 손’ 때문에 몇 번이고 임선혜의 노래를 다시 듣고 그녀의 연기를 머릿속에 그리게 된다. 내년 봄 출시 예정인 DVD를 통해 그 모습을 영상으로 본다면, 이번 음반의 다른 아쉬움도 충분히 보상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