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ABC] 클래식과 와인의 공통점들
닮은 꼴이라해도 좋을 정도로 클래식 음악과 와인에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우선 ‘빈티지(vintage)’가 모두 중요하지요. 같은 포도주라고 해도 생산 연도와 그해의 기후, 일조량에 따라 품질이 천차만별인 것처럼, 같은 지휘자가 같은 베토벤의 교향곡을 지휘했다고 해도 ‘녹음 연도’에 따라 수없이 많은 판본이 나오게 마련입니다.
지휘자 푸르트벵글러의 교향곡 9번 ‘합창’은 실제 베토벤 교향곡의 최고급 품종으로 꼽힙니다. 그는 베를린 필하모닉과만 1930년·1932년·1937년·1942년에 호흡을 맞췄습니다. 빈 필하모닉과도 4차례가량 같은 곡을 연주했지요. 이를테면 푸르트벵글러 ‘합창’ 교향곡의 ‘빈티지’는 대략 10여 종(種)에 이르는 셈입니다.
‘시간의 예술’이라는 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와인을 소주나 폭탄주처럼 단숨에 들이키지 않듯, 음악 역시 ‘빨리 감기’로 들을 수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혀에서 그 맛이 변하고, 귀에서 그 멋이 변해가는 모습은 어쩌면 삶과도 꼭 닮아 있습니다.
아무래도 수입산의 비중이 높고 비싸게 대접받는 것도 흡사합니다. ‘프랑스 산 와인’하면 자연스럽게 고급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처럼, 같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라고 해도 빈 슈타츠오퍼(빈 국립 오페라 극장)가 연주하면 티켓 가격은 45만원까지 치솟습니다.
아무리 명품이라고 해도 정작 뚜껑을 따기 전엔 잘 모른다는 점도 닮아 있습니다. 와인 조견표에는 생산 연도와 품종에 따라 수십 종이 구분되어 있지만 코르크 마개를 따서 시음해보기 전엔 그 맛을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평단에서 “한 세기에 나올까 말까한 불세출의 명반”이라고 칭찬해도 정작 들어보기 전에는 그 음악이 어떤지 알 수 없습니다. 와인을 다룬 만화 ‘신의 물방울’이든, 음반 선택의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이 한 장의 명반’이든 추천은 말 그대로 추천일 뿐입니다. 프랑스의 ‘5대 샤토’처럼 이른바 클래식 음악에도 ‘세계 3대 교향악단’과 ‘미국의 5대 교향악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름만 좇다보면 허영심의 포로가 되고 맙니다. 결국 중요한 건 나만의 심미안과 감식안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