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 흑 반 집 승

〈제12보〉(171~209)=10년 전만 해도 1집 반 이상 승부는 실력이지만 반 집 차는 운의 소관으로 돌렸었다. 반 집이 실제 반상(盤上)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수치이듯 그 승패 또한 하늘의 뜻이란 식이었다. 하지만 계산과 끝내기 기술이 초정밀화되면서 ‘반 집 역시 실력’이란 쪽으로 바뀌었다.

그 단초를 제공한 기사가 신산(神算)이란 별명과 함께 혜성처럼 등장했던 이창호였다.

171이 마지막 남은 큰 곳. 쌍방 권리 행사가 착착 진행되는 가운데 183부터 류징도 초읽기에 합류했다. 197이 놓이면 198로 연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아쉽다. 마지막 의문은 200으로 참고도 1로 버틸 수 없느냐 하는 것. 2집짜리 역끝내기여서 매우 유혹적인 자리인데, 하지만 2가 맞보기여서 득실은 변함이 없다. 백이 2에 단수 치면 흑도 받지 않고 1을 선수한다는 얘기.

206은 후수 3집 반 크기로 이 무렵엔 최대처다. 이 바둑은 장장 240수까지 이어졌으나 209수 이하는 무의미하므로 여기서 끊는다. 계가 결과는 역시 흑을 쥔 류징의 반 집 승리.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올리는 조치훈의 입에서 가느다란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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