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계의 오빠’ 랑랑 여성팬들을 사로잡다

3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반짝이는 검은 정장 차림의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25)이 들어서자, 객석 3층과 합창석을 시작으로 환호성이 번져나갔다. 10~20대 여성 팬을 중심으로 공연 전에 2500여 석은 이미 매진을 이뤘다. 리사이틀의 열기는 여느 가요나 팝 공연 못지않았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K.330과 슈만의 ‘어린이 정경’ 등 랑랑이 유년 시절부터 즐겨 연주하거나 들었던 곡들을 이날 레퍼토리로 담았다. 랑랑은 지난해 자신의 음반 ‘메모리(Memory)’에서 이 곡들을 녹음하기도 했다. 그만큼 친숙하지만 자칫 상투적 해석의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다.

첫 곡인 모차르트 소나타 K.330부터 랑랑은 극단적인 강약의 대조와 함께 가볍게 툭툭 끊어치는 왼손과 마치 쓰다듬듯 건반을 어루만지는 오른손을 대비시키며 곡을 전개했다. 원곡이 지니고 있는 명암의 차이를 극대화시키며 화려함을 강조하는 것은 랑랑의 특기이기도 하다. 그의 연주에는 때로 “자극적”이라는 비판과 “신선하다”는 호평이 엇갈리지만, 즉각적인 결과를 눈 앞에서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 시대와 어쩌면 가장 잘 어울리는 연주이기도 하다.

2부 첫 곡인 슈만의 ‘어린이 정경’ 13곡부터는 무시무시한 속도전을 펼쳐나갔다. 아이들의 놀이 장면을 발랄하게 담은 ‘술래잡기’에서는 열 손가락의 속도감을 한껏 높였고, ‘트로이메라이’에서는 거꾸로 건반의 여운을 길게 끌고 나갔다. 어릴 적 랑랑이 즐겨보았던 만화 ‘톰과 제리’에 삽입됐던 리스트의 ‘헝가리안 랩소디’ 2번을 마지막 곡으로 선사했다.

랑랑은 원곡보다 긴박함과 흥겨움을 더욱 살리며, 두 손으로 고양이와 쥐의 유쾌한 추격전과 복수전을 그렸다. 공연이 끝난 뒤, 팬 1000여 명의 카메라 세례와 사인 공세에 사인회가 잠시 중단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결국 1시간 30여 분간의 팬 사인회는 오후 11시30분이 넘어서야 끝났지만, 랑랑은 표정 한번 찡그리지 않고 구김살 없이 카메라를 향해 두 손가락으로 ‘브이(V)’자를 그리거나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엔터테인먼트 역시 엄연히 21세기 클래식 음악의 필수 요소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던 내한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