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데뷔때 지휘봉 놓쳐… ”

핀란드 출신의 명피아니스트인 랄프 고토니(Gothoni·61)는 열한 살에 피아노 데뷔 무대를 가졌지만, 지휘자로는 비교적 데뷔가 늦은 편이다. 당초 1981년 핀란드의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협연자로 나왔다. 하지만 1부 피아노 협연이 끝난 뒤, 갑자기 지휘자가 통증을 호소했다. 고토니가 “나라도 대신 지휘봉을 잡을까”라고 묻자, 지휘자는 그 자리에서 지휘봉을 고토니에게 건네줬다. 고토니는 인터뷰에서 “첫 지휘 무대는 분명 ‘재앙’이었기에 지금도 똑똑히 기억한다”며 웃었다. 고토니의 지휘 데뷔 무대가 된 당시 연주회의 2부 곡목은 슈베르트의 교향곡 5번이었다.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커지는 대목에서는 지휘 동작도 더불어 크게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무사히 1악장이 끝난 뒤, 2악장에서 지휘봉을 든 오른손을 크게 휘저었다. 아뿔싸. 손에서 벗어난 지휘봉은 허공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다행히 떨어지는 지휘봉을 왼손으로 잡기는 했지만, 단원들뿐 아니라 객석도 ‘웃음 바다’가 되는 바람에 연주는 중단될 수밖에 없었죠.” 슈베르트의 교향곡은 2악장부터 처음부터 다시 연주해야 했다. 그는 “차가운 물에서 수영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그대로 물에 뛰어드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지휘 데뷔 신고식’은 호됐지만, 지금은 무대에서 피아노 연주와 지휘를 함께 하며 2000년부터 영국의 명문 악단인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도 7일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11·14번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동시에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6일 공연(협연: 첼로 송영훈, 바이올린 이미경)에서는 지휘를, 7일 무대에서는 지휘와 연주를 동시에 선보이는 셈이다. 고토니는 “모든 음악은 연주자 사이의 대화에서 출발하며, 지휘든 협연이든 실내악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하이든 서거 200주기인 2009년에는 이 악단과 하이든의 건반 곡을 함께 연주할 계획이다.

고토니의 부인은 바이올리니스트 엘리나 바하라(Vahala)이며, 두 아들 역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연주한다. 첫째 며느리도 일본인 첼리스트이며, 둘째 며느리는 올해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독일 뮌헨에서 초연한 작곡가 진은숙씨다. 가족 6명이 모두 음악가인 ‘음악 가족’이다. 그는 “서로 관심사가 같고, 각자 음악 활동으로 바쁘기 때문에 만날 때마다 신선하고 활력을 얻는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6·7일 예술의 전당에서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6·7일 오후8시 예술의전당, (02)580-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