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손길에… 한국의 산이 되살아났다

작년 제18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자인 서양화가 민정기(58)의 수상기념전이 8~18일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열린다. 전시를 앞두고 2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산골에 있는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작품은 다 완성 되었나요” 하자, 민정기는 “작품에 완성이라는 게 있나요. 전시실에 건 뒤에도 조금씩 칠하고 또 칠하는데…” 했다.

그는 우리 근현대 미술사에서 민중미술의 선구자로 기록돼 있다. 1972년 서울대 회화과(서양화 전공)를 졸업하고 1980년에 손장섭 임옥상 오윤 등과 함께 민중미술운동 그룹인 ‘현실과 발언’을 창립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민중미술’이라는 한 단어로 규정하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풍경화에, 민화에, 초현실주의적인 모습까지도 보인다. 이번 수상기념전은 민정기가 양평 산골에 들어가 작업한 지 20년 되는 시점에서 하는 중간 결산의 의미도 담고 있다. 특히 상을 받은 이후 1년 동안 집중해서 그린 대형 풍경화를 중심으로 10여 점을 보여준다. 양평군 이포와 양수리, 영월군 청령포 등 남한강 줄기를 따라 경기도, 강원도 등을 여행하며 그린 그림들이다. 북한산을 여러 번 답사해 고(古)지도 모양으로 그린 북한산 대작도 눈을 사로 잡는다.

“산은 산일 뿐인데, 강에는 사람 사는 얘기가 많이 들어 있어요. 겸재 정선이 한강 따라 가며 서울풍경을 그렇게 많이 그린 것은 이유가 있어요.” 민정기는 “현대사회에서도 그림은 큰 건물 안에서 여러 사람이 많이 보는 것이니, 이왕이면 사람들이 보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담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구상화를 고집한다.

이번 풍경화에도 사람들 이야기가 가득 담겼다. 경기도 용문산 풍경에는 주변 가평군 묵안리에 사는 한 노인에게 들은 마을의 전설을 압축해서 같이 그렸고, 충북 단양 풍경에는 ‘단양 8경’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수려한 자연 풍경과 시멘트 공장이 들어선 현대의 단양 모습을 나란히 함께 담았다. 홍수로 수몰된 마을 사람들 넋을 기리는 비(碑)까지, 원근법이 무시된 고지도 모양의 독특한 풍경화에 다 들어갔다.

민정기는 전통 산수화의 분위기를 살려내기 때문에 유화의 도구를 가지고서도 영락없는 ‘우리그림’ 맛을 낸다. 그런 점에서 이중섭을 닮은 작가다. 미술평론가 최민은 이번 민정기의 작품들을 보고 “대형 풍경그림이라는 단어 보다는 대폭산수(大幅山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기법, 채색,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서구회화적인 풍경화보다는 산수화라는 동양적 개념에 부합하기 때문이다”며 “현대미술이 간과해온 고전적인 품격이 독특한 방식으로 되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02)724-6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