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광주’에서 길 잃은 한국판 제리 맥과이어

시작은 깔끔했다. ‘Show me the money’(돈 좀 벌게 해줘!)라는 요구를 화끈하게 이뤄낸 제리 맥과이어(톰 크루즈). 한국판 제리 맥과이어인 이호창(임창정)이 이 삶은 계란을 꾸역꾸역 집어넣으며 광주로 향할 때의 모습은 기대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국보급 괴물 투수’ 선동열을 낚아채 오라는 명령에 일단 부딪히고 보는 ‘스포츠 에이전트’ 이호창에게서 제리 맥과이어 이상의 패기가 느껴졌으니 말이다. 게다가 80년대를 완벽하게 재현한 광주 거리, 호창의 비틀스 스타일 의상과 헤어 스타일뿐만 아니라 맥주병, 전화기 같은 소품까지도 섬세하게 배치해 놓은 모습에서 무척이나 공들인 티가 난다.

숨겨진 재미는 또 있다. 선동열 이후 광주를 대표하는 ‘바람의 아들’ 이종범의 등장. 모랫바닥 운동장에서 축구를 즐기던 아이가 호창이 건네준 글러브 덕에 타고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게 됐다는 ‘작가적 상상력’이 즐겁게 버무려진 부분도 맛깔스럽다. 역시나 광주 출신으로 걸쭉하게 사투리를 구사하던 ‘순수한 주먹’ 곤태(박철민)의 연기 역시 양념 요소로는 훌륭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9박10일간 벌어진다던 스카우트 전쟁은 하루 이틀 ‘바짝’하더니 요상하게 ‘광주(光州)’와 뒤범벅된다. 운동권이던 첫사랑 세영(엄지원)을 다시 만나게 되면서 호창의 여정은 쇠파이프와 각목의 맞대결로 바뀌어 버린다. ‘광주의 아들’ 선동열이 1980년 전국을 들썩이며 서울로 스카우트 된 역사적 사실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맞물리는 설정 자체는 충분히 개연성 있고 의식있는 상상력이지만 ‘광주’라는 역사적 무게감에 짓눌리는 바람에 스토리가 방향을 잃고 만다. .

‘YMCA야구단’으로 야구에 관한 열정을, ‘광식이 동생 광태’로 코믹한 순애보를 무리 없이 그려낸 김현석 감독은 코미디와 시대극이라는 장르적 혼합을 매끄럽게 그려내고자 했으나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그 둘의 결합은 어정쩡한 멜로 라인과 더불어 영화의 본질을 흐렸다. 1980년 당시 8살이었던 어린 ‘감독’은 영원한 우상 선동열 아파트 옆 동에 살면서 키워 왔던 27년간의 감정을 한꺼번에 풀어내려다 힘 조절에 실패한 듯싶다. 14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