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 허허실실

〈제7보〉(88~100)=11월 국내 랭킹서 조훈현(55)은 17위에 머물렀다. 9세 입단, 49세 세계제패, 세계 최다 우승(157개) 등 기록의 성찬(盛饌) 속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인이 고작 17위라니…. 하지만 스무 살 전후 청년들의 각축장인 바둑계에서 50대 중반 나이에 20위권에 든다는 건 조훈현만이 가능한 일이란 얘기도 나온다. 승부사들에게 세월만큼 무서운 적(敵)이 또 있을까.

92까지 우하귀 흑이 선수로 산 뒤 93으로 부딪쳐 간다. 94는 지극히 당연해 보이건만 무려 24분이나 숙고한 수. 95 때 96이 침착한 수라는 호평을 받았다. 이 수로 기세랍시고 참고도 1로 젖히는 것은 8까지 흑의 꽃놀이성 패가 발생, 일거에 망한다. 장고(長考)는 이런 모든 변화와 형세를 점검하기 위한 시간이었던 셈.

97도 일종의 미끼다. 덥석 ‘가’로 받았다간 ‘나’로 건너붙임당해 절단된다. 어쨌든 99로 뚫어 흑이 ‘한 건’ 올린 느낌. 하지만 백도 100으로 넘어 큰 불만은 없다. 고수들다운 허허실실의 공방 속에 바둑은 여전히 우열을 가리기 힘든 접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