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짓으로 끌어올린 열정

어떤 지휘자는 손짓으로, 어떤 지휘자는 눈빛으로 말한다. 지난 11일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린 뮌헨 필하모닉의 내한 공연에서 후반부 곡은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이었다. 이들의 진가가 드러난 대목은 마지막 4악장이었다.

지휘자 크리스티안 틸레만(Thielemann)이 이끄는 뮌헨 필은 극도로 늦은 박자로 시작해서 점차 폭풍처럼 몰아쳐가며, 브람스의 고전적 품격을 재조합했다.

지난해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니벨룽의 반지’의 음악 감독을 꿰차며 유럽 음악계의 중심에 들어선 틸레만은 곡에 한껏 긴장감을 불어넣었고, 때로는 브람스가 브루크너의 교향곡처럼 들릴 정도로 표정이 풍부하고 다채로웠다.

곡의 해석만큼이나 이채로웠던 것이 지휘자의 동작이었다. 면밀한 악보 분석으로 정평이 나있는 틸레만은 고저와 강약, 장단이 바뀔 때마다 지휘봉을 일일이 조절하며 악단을 향해 꼼꼼하게 지시를 내렸다.

현악이 저음으로 내려갈 때는 지휘봉도 무릎 아래까지 내려갔고, 관악이 울려퍼지는 대목에서는 이미 그의 지휘봉도 관악 파트를 향해 다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쿵’하는 소리와 함께 단상 위로 힘차게 뛰어 올라온 틸레만은 자신의 최고의 장기로 꼽히는 바그너의 ‘뉘른베르크 명가수’ 전주곡을 앙코르로 선사했다.

바로 다음날인 12일 예술의전당을 찾은 파리 오케스트라(지휘 크리스토프 에센바흐·Eschenbach)의 내한 공연에서는 정반대의 풍경이 펼쳐졌다.

마지막 곡인 라벨의 ‘볼레로’에서 에센바흐는 두 손을 모두 내린 채, 악단의 도입부 연주를 지켜보고 있었다.

단순하면서도 매혹적인 멜로디가 전체 관현악으로 점차 확산되는 동안에도 에센바흐는 지휘봉을 올리지 않은 채, 고개만 돌리거나 끄덕이며 눈빛과 턱짓으로 지휘했다.

10여 분이 흐르고 마지막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 에센바흐는 갑자기 지휘봉을 들어올리는 포즈로 객석의 흥분을 자아냈다. 연주회의 앙코르는 없었지만, 별다른 앙코르가 필요해 보이지는 않았다.

독일 관현악으로 꾸민 뮌헨 필하모닉과 프랑스 빛으로 물든 파리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은 레퍼토리의 차이뿐 아니라 지휘자의 동선(動線)으로도 즐거움을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