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품 소장경로까지 담은 ‘작품 족보 圖錄’으로 감시
프랑스, 미국, 일본 등 외국에서는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e)’라는 도록(圖錄)을 통해 위작을 막고 있다. 카탈로그 레조네는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모아놓은 도록이지만, 작품 도판(圖版·인쇄물에 들어가는 그림)만 실은 것이 아니라 재질, 제작시기는 물론이고 소장 경로와 전시 이력까지 꼼꼼히 담고 있다. 이 도록만 보면 어느 작가의 어떤 그림이 어디에 소장돼 있다가 누구의 손을 통해 어디로 옮겨졌는지를 금세 알 수 있어 ‘작품 족보’로도 불린다.
카탈로그 레조네는 보통 그 작가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한 권위자가 집필한다. 때로는 작가가 그림을 그릴 당시의 심리까지도 분석한다. 장르별, 제작 시기별, 경향별로 도록을 따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작품 세계 전반을 세밀하게 다루기 때문에 이 도록을 만드는 데만 10년이 걸리기도 한다. 작고한 작가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작가에 대해서도 도록을 만들고, 작품 활동에 따라 내용을 갱신한다. 이런 정밀한 자료들이 작가 사후(死後)에 위작의 유통을 막는 역할을 한다.
외국 유명 화랑이나 경매회사뿐 아니라 개인 소장가가 작품을 사고팔 때 반드시 이 도록의 이력을 확인한다. 우리나라에는 카탈로그 레조네가 있는 화가가 거의 없다.
또 중국이나 네덜란드의 경우 국가가 관리하는 감정기관이 위작을 막는 기능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설 감정기관만 있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감정 시점으로부터 30년 동안 감정기관이 감정 결과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도록 돼 있다. 책임이 크다 보니 감정사들이 연대해 보험까지 가입할 정도다. 우리나라는 공소시효가 5년에 불과하다. 경희대 최병식 교수는 “한국 미술시장이 잇따른 위작 사건을 털고 신뢰를 회복하려면 외국의 좋은 제도를 배우고 전문적 감정이 자리잡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