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 노장의 비애(悲哀)

〈제9보〉(115~128)=“필승의 바둑을 짰다가도 오후 들면 한 순간에 무너져버리니….” 노장 기사들의 한결같은 푸념이다. 검투사나 스포츠맨들만 그런 줄 알지만, 머리만을 이용하는 바둑에서도 나이와 집중력은 정확히 반비례한다. 청년 기사들의 착점은 종반에 접어들면서 오히려 기계처럼 정확해지는데 그 시기를 견디지 못하는 것. 노장들은 승부보다도 그들의 젊음 그 자체가 더 부러운 눈치다.

115는 큰 곳이지만 치명적 실착. 참고도 1로 우하귀 패를 결행할 타이밍이었다. 흑은 A B C 등 손해 없는 팻감이 도처에 널려있다. D의 패까지 이기기가 어렵다면 E로 밑에서 단수치는 한이 있어도 이 길이 옳았고, 그랬으면 여전히 미세한 형세였다는 결론. 거꾸로 백 116으로 먼저 간 수가 승착(勝着)이 됐다.

결국 127로 후퇴하고 128로 때려내자 팽팽하던 바둑이 갑자기 백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불과 몇 수 사이에 벌어진 사건. 하지만 아직도 흑에겐 희망이 사라진 게 아니었다. 문제는 흑의 판단 미스가 이 직후 또다시 등장했다는 점. 비극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120 126…△, 123…117)